민낯의 나를 만나는 섣달 그믐밤

김별아(소설가)

Visit470 Date2015.12.30 09:35

그믐ⓒ뉴시스

한 해가 막 끝나는 날을 섣달그믐(除日)이라 하고, 그 그믐날이 막 저물어 갈 때를 그믐날 저녁(除夕)이라 합니다. 네 계절이 번갈아 갈리고 세월이 오고가니, 우리네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도 믿을 수 없고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습니다. (…) 10년의 세월이 어느 날인들 아깝지 않겠습니까마는 유독 섣달 그믐날에 슬픔을 느낍니다. 그것은 하루 사이에 묵은해와 새해가 바뀌니, 사람들이 늙음을 날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해로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날이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실은 그 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고, 그 해가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늙음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저의 감회는 이런 것들과 다릅니다. 저는 덕을 닦지도 못하고 학문을 통달하지도 못한 것이 늘 유감스러우니, 아마 죽기 전까지는 하루도 유감스럽지 않은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해가 저무는 감회는 특히 유감 중에서도 유감입니다. 이로써 저는 스스로 마음에 경계합니다. “세월은 이처럼 빨리 지나가고, 나에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죽을 때가 되어서도 남에게 칭송받을 일을 하지 못함을 성인은 싫어했다. 살아서는 볼 만한 것이 없고 죽어서는 전해지는 것이 없다면, 초목이 시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하략)”
–이명한(1595-1645), 1616년 광해군 8년 증광회시 책문에 대한 대책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5

그해 왕이 대과의 마지막 관문에 들어선 33인의 수험생에게 냈던 논술 주제, 책문(策問)은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였다. 1608년부터 1623년까지 15년간 재위한 광해군이 조선의 왕으로 살았던 시간의 한가운데, 바로 그때였다. 대과의 합격자들은 조선의 인재 중 인재로 왕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갈 인물들이었으니 그들을 향한 책문이야말로 시험을 뛰어넘는 중요한 대화이자 비전(vision)의 제시였다.

세종대왕은 법의 폐단을 고치는 방법은 무엇인지와 어떻게 인재를 구할 것인가를 물었다. 중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외교관은 어떤 자질을 갖추어야 하는가를 물었고, 명종은 육부의 관리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반정(反正)으로 폐위 당한 광해군 시절이 난세는 난세였다는 증거가 책문에서도 배어나온다. 정벌이냐 화친이냐,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질문은 다급했고 대답은 날카로웠다. 그러다 문득 던져진 섣달 그믐밤에 서글픈 까닭을 묻는 질문은 얼마간 돌출적이면서 역사의 결과를 아는 후대에게 애상적으로 느껴진다.

12월 31일 밤, 보신각 타종을 기다리며 연예인들이 상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에 깃드는 서글픔은 이명한의 말대로 스러져가는 젊음과 다가오는 백발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수석 합격자답게 일체의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수밖에 없다는 모범답안을 내놓지만, 정녕 아쉬움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든 불만족하든 그것을 끌고나가야 할 자기뿐이다. 쓸쓸하거나 막막하거나, 지금껏 애써왔고 앞으로 애써야 할 자신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섣달 그믐밤, 민낯의 나를 만나기에 이보다 적당한 때는 다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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