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고 사랑받을 때 가장 빛난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12.11. 16:45

수정일 2015.12.29. 13:24

조회 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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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가 공자께 여쭈었다. “어짊(仁)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번지가 다시 여쭈었다. “앎(知)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사람을 아는 것이니라.”
--공자 《논어》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3

공자의 제자 중에서 스승의 수레를 몬 사람은 번지와 염유 두 사람뿐인데, 그 중에서 번지는 질문을 잘하는 학생이었다. 어짊을 묻고 앎을 묻고 정치를 묻고, 묻고도 이해가 안 되면 또 묻고, 옆의 친구에게까지 물어 확인했다. 그리하여 궁금한 게 많고 이해가 안 되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번지 덕분에 우리도 성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질문들 중에서도 《논어》의 중심 주제인 인(仁)과 지(知)를 물은 것으로 번지의 중요도가 더욱 높아진다. 말몰이를 하면서도 배우려는 열의가 있으면 지척의 거리에 마주앉은 애제자가 부럽지 않다.

사람을 널리 사랑하는 인, 사람을 아는 지, 그처럼 명쾌한 배움은 다시없을 것이다. 어진 이는 편벽됨이 없으니 차별하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한다.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서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애정의 조건이 된다. 알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고 다시 가르치지만, 그 공부의 근본은 다름 아닌 사람을 아는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것도 사람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심오한 철학이나 종교, 문학예술 전부가 기실 이 간명한 진리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결국엔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과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할 것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고민하고 궁리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철학과 종교와 예술의 핵심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롯해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인류의 고백이기도 하다.

서로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각각이 살아내기 힘들고 고단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다붙어 살아가다 보니 아웅다웅할 수밖에 없다. 어진 마음은 편안한 얼굴로 표현되는데 아무리 의학기술이 좋아져서 얼굴을 팽팽하고 탄력 있게 하는 약물을 주입받아도 불편한 기색까지는 숨길 수 없다. 사랑하지 않다 보니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어진다. 한국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혐오주의는 분열의 원인이면서 결과다.

독자와의 만남이니 강연이니 하여 정해진 대상 없이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여러 세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당사자들은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 특정한 집단에는 반드시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 어떤 곳은 장소부터 사람들까지 춥고 까칠하고, 어떤 곳은 수수하고 소박한 모습으로 다들 웃고 있다. 원인이 무언가 가만히 살펴보니, 결국에는 사랑과 이해다.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은 형편이 어려워도 다들 착하다고 말하는 학교는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다. 상관이 우리 직원들은 업무를 넘어 자기 생활에 충실하다고 말하는 직장은 사원들이 편안하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람은 이해받고 사랑받을 때 가장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줄 줄 안다. 개인은 작고 그 힘은 미약하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촛불도 횃불만큼이나 크고 환한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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