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이 있는 재래식 대장간, 불광대장간

이장희

발행일 2015.12.14. 14:30

수정일 2015.12.29. 13:26

조회 3,763

서울의 오래된 것들 (9) 불광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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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공장이 철제 생산품의 대부분을 잠식한 오늘날, 화덕을 갖춘 재래식 대장간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서울에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대장간이 몇 군데 남아 있어 놀랍기만 하다. 그 가운데 물건 좋기로 소문난 대장간이 있어 은평구의 불광동을 찾았다.

불광동은 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진 동네다. 이제 집들로 가득하여 서울의 여느 곳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곳이 되었지만 왠지 동네 이름만은 대장간의 상호와도 은근히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곳에서 50년을 넘게 대장간 화덕의 불을 지피고 있는 대장장이 박정원 씨는 13세 때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전쟁 중 피란을 갔던 낯선 동네에서 생계를 위해 대장간에서 허드렛일을 도왔던 것이 대장장이의 길로 들어선 계기였다. 전쟁 후에는 본격적으로 미아동 부근에서 대장일을 배우며 일을 해오다 1963년 불광동에서 자신의 대장간을 열었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

한때 농기구의 주문이 하도 많아 직원까지 두어가며 장사를 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 않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대규모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값싼 연장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지척에 있는 서부시외버스터미널의 몰락도 한몫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유동 인구가 많아 활기가 넘쳐났던 버스터미널은 고양, 파주, 양주 등 외곽으로 향하는 버스가 서울에서 바로 연결되는 노선이 생겨난 데다 지하철까지 개통되면서 말 그대로 이름만 남은 텅 빈 터미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대장간의 생명력은 모진 담금질만큼이나 강했다. 수제 연장을 취급하는 대장간의 고집스러운 옛 방식이 오히려 큰 장점이 된 것이다. 대량생산형의 값싼 공장 제품들과 오랜 시간 메질과 담금질을 반복한 수제품의 차이는 품질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았다. 나아가 원하는 모양의 맞춤형 주문제작은 현존하는 대장간의 더없는 매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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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아침 대장간을 찾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망치질 소리. 제대 후 아버지를 도우며 맥을 잇고 있는 아들 박상범 씨의 메질이 경쾌하게만 느껴졌다. 근처 재래시장 상인이 칼을 갈러 왔다 갔고, 어느 손님은 사진을, 또 다른 손님은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찾아와 맞춤 공구를 의뢰했다. 그때마다 두 대장장이는 메질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누었다. 부자간의 이야기는 대장장이 사이의 토론이 되어 서서히 결론이 도출되어갔다. 그 인상적인 모습들이 만들어낼 결과물이 어찌 믿음이 가지 않겠는가 싶다.

나는 호미 2개를 구입했다. 만들어진 호미들의 모습이 조금씩 다른 것은 대장간 물건들만의 또 다른 매력. 하나씩 잡아보며 신중하게 골라본다. 긴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날 텃밭에서 누릴 호미질 맛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계산을 하고 나니 이내 망치질 소리가 다시 시작된다. 망치질마다 튀어 오르는 불꽃. 인류의 오랜 역사와 함께 이어져 왔을 전통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끼는 이 기분. 먼지와 매연부터 연상되는 자동차 소리 가득한 서울 한복판에서 그 울림은 잠시나마 시골 들녘의 누런 가을빛 살랑임을 떠올려주고 있었다.

출처_서울사랑 vol.147(2014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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