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 극동아파트 ‘지하조직’의 비밀

시민기자 김영옥

발행일 2015.12.04. 14:10

수정일 2015.12.29. 13:12

조회 2,468

도봉구청 1층 갤러리에서 열린 햇살문화원 전시회

도봉구청 1층 갤러리에서 열린 햇살문화원 전시회

한해를 마무리 하는 12월엔 여기저기 공연도 많고 전시회도 많이 열린다. 그 중 유독 반가운 전시회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1일, 도봉구청 1층 갤러리에서는 ‘제2회 햇살문화원 작품 전시회’라는 소박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캘리그래피가 작은 액자에 담겨 있는가 하면, 앙증맞은 그림들이 작은 서랍장이며 벽시계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양말로 만든 인형들과 코바늘 손뜨개로 만든 가방과 모자, 목도리, 프랑스자수 액자와 다양한 공예소품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양말로 만든 인형, 캘리그래피 작품 등이 전시됐다

양말로 만든 인형, 캘리그래피 작품 등이 전시됐다

“햇살문화원이 도봉문화원 같은 곳인가요?” 발길을 멈추고 작품을 눈여겨보던 중년여성이 전시회 지킴이로 있던 정희경씨에게 물었다.

“아니요, 햇살문화원은 방학동 극동아파트에 있는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예요. 그곳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주민들과 서로 나누면서, 배우고 익혀 이렇게 작품들을 만든 거랍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이 소박한 전시회는 다른 문화교실의 전시회와는 다른 사연이 숨어 있었다.

아파트 지하 공간에서 빚어낸 주민들의 ‘햇살’ 같은 솜씨

햇살문화원(원장 이미실)은 도봉구 방학동 극동아파트 지하공간에 마련된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이자 사랑방이며 공방이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햇살문화원에 모여 예쁜 손글씨 캘리그래피와 프랑스자수, 코바늘손뜨개, 냅킨아트, 리폼인형, 양말인형 등을 배우고 있다. 강좌는 주민 재능기부로 이뤄지고, 아파트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인근 주민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햇살문화원 입구

지하로 내려가는 햇살문화원 입구

“2년 전 햇살문화원에 문을 두드릴 즈음, 육아우울증을 겪고 있었어요. 힘든 육아로 지쳐 있을 때 햇살처럼 따뜻하고 밝은 공간에서 좋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내가 사는 아파트 지하공간이니까 가기도 쉽고, 같은 아파트 사람들과 만나 교류하며 아이 키우는 도움도 얻고 배우고 싶었던 손뜨개, 프랑스자수, 냅킨아트를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멋진 가방과 뜨게 작품을 낸 배윤희씨의 소감이다.

“햇살문화원이란 공간에서 만난 이웃들이 너무도 인간적이어서 속내를 보여도 상처 받을 일 없고, 무언가를 줘도 아깝지 않고, 받아도 미안하지 않다”는 배윤희 씨의 말을 듣다보니, ‘아파트는 이웃들 간의 정이 없고 삭막하다’라는 인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남편이 방명록에 축하 메시지까지 전하고 간 이미라(41세)씨도 “육아와 집안 일만 하던 때와 달리 이웃들과 함께 토탈공예강좌를 통해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작품들을 완성해 작품 전시회까지 열 수 있어 너무 자랑스럽다”며,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제 자신이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 자존감도 찾았다”고 말했다.

157세대의 작은 아파트에 일어난 기분 좋은 변화들

도봉구 방학동 극동아파트는 157세대의 작은 아파트다. 이 작은 아파트에 2년 전 신나는 변화가 생겼다. 이곳 주민들에겐 그 흔한 주민사랑방도 없었다. 주민들의 모임공간이 없는 것을 늘 안타까워했던 원영례 관리사무소장은 2013년 봄, 자치구에서 공간지원 사업을 공모하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알려왔다. 관리소장과 4명의 입주자대표들, 주민들은 합심해서 아파트 내에 유휴공간을 찾아 나섰다. 아파트 단지가 작다보니 마땅한 유휴공간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드디어 다양한 시설의 배관들이 덜 복잡하게 설치된 지하공간을 찾아냈고, 구청의 공간지원 사업 지원금으로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햇살문화원 표지판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햇살문화원 표지판

주민들은 지하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가 고민했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주민, 관리사무소장, 직원들이 의기투합했다. 관리소장은 지하 공간의 페인트칠을 도맡았고, 이미실 공동체활성화 회장을 비롯한 아파트 주민 5명은 발품을 팔아가며 공간에 필요한 소품들을 사다 직접 공간을 꾸몄다. 학생들 공부방인 봉숭아학당, 다양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듬쑥공방, 소모임 방인 하하호호방, 할머니들의 모임방인 사랑방, 차를 나눠 마실 수 있는 행복카페 등 9개의 테마 공간이 만들어지며 그해 10월 햇살문화원이라는 예쁜 문패를 달고 개관했다. 칙칙한 아파트 지하공간이 화사한 주민들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듬쑥공방(좌), 하하호호방(우)

듬쑥공방(좌), 하하호호방(우)

아파트 주민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솔선해서 나누고자 했고, 이런 주민들의 재능 기부는 공간 탄생과 더불어 아파트 주민들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자수, 코바늘손뜨개, 냅킨아트, 리폼아트, 양말인형 등을 배울 수 있는 토탈공예강좌, 예쁜글씨를 배워 컵이나 나무 등 어디든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캘리그래피강좌, 요가교실 등 주민들의 재능기부가 이어졌다.

“이곳에서 5년 정도 산 아파트 주민이면서 햇살문화원에서는 강사가 됐죠. 자수, 퀼트, 손뜨게, 냅킨아트 등 실과 바늘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어요. 처음에는 냅킨아트만 했는데 주민들과 함께 공예품들을 만들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느 샌가 주민들과 함께 다 나누고 있더라구요.” 햇살문화원이 주민들의 공방으로 자리 잡기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토탈공예강좌 한경애(40세)강사는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지난 시간들이 의미있었다고 했다.

공동체적 마을살이의 첫걸음은 이웃과 함께 하는 것

“햇살문화원의 장점은 개방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아파트 주민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 누구에게나 동네 사랑방이자 공방으로 열려 있어요. 그야말로 벽이 없죠.” 감성이 묻어나는 글씨 캘리그래피 강좌를 맡고 있는 윤정화 강사는 어느 아파트, 어느 공간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햇살문화원만의 공간 특성으로 개방성을 꼽았다. 공간을 만들고,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열린 마음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12월엔 서울시 모범관리단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지난 12월엔 서울시 모범관리단지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2014년에는 서울시 공동주택 모범관리 단지로 선정되는 경사도 있었다. 햇살문화원은 한 아파트 안에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개념을 넘어 인근 지역에 좋은 에너지를 전파하고 있다. 아파트 주변의 환경 보호를 위해 아파트 인근 북한산둘레길 청소도 진행하는가 하면 최근 아파트 옆에 개관한 간송전형필가옥(국가문화재 521호)의 청소와 해설 등 자원봉사 지킴이 활동도 도맡고 있다.

햇살문화원의 주역들

햇살문화원의 주역들

칙칙한 아파트 지하공간을 따뜻한 온기가 넘치는 주민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어내고, 주민들은 재능기부로 그 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공예품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예품을 도봉구청에 당당히 전시하며 자신들의 활동을 알렸던 갤러리가 막을 내렸다. 방학동 극동아파트 주민들의 행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이들이 마을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택하면서 소소한 일상도 마을 안에서 즐겁고 의미있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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