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란 말이야? 난 할 만큼 했다고!”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11.27. 15:42

수정일 2015.12.29. 12:59

조회 917

나무ⓒaandd

인간은 곤란함을 피한다. 탐구를 견뎌내지 못하는 탓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희망을 구속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심오한 부분도 배척한다. 미신 때문이다.
경험의 빛도 거부한다. 자신의 오만함과 자존심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하잘 것 없고 덧없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낯설고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외면한다.
통속적인 견해를 이기지 못하는 탓이다.
-프랜시스 베이컨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101

듣는 순간 무릎을 치게 만드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의 원칙은 ‘첫 번째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물리학은 도무지 알 수 없어도 그 말만은 사무치게 이해된다. 그 원칙이야말로 학문과 연구뿐만이 아니라 삶과 관계 모두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얼마간의 과장을 포함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사기꾼이다. 자기를 속이기에 골몰하고 또 잘 속아 넘어간다. 기실 사기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욕망 혹은 욕망으로 인한 과실이 맞물렸을 때 일어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속이는 데는 남들을 속이는 것만큼의 공력도 들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취약점, 어떤 헛된 욕망을 품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므로.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를 정연하게 표현해 ‘인간의 오성은 냉담한 빛(명료하고 불편부당한 견해)이 아니라 욕구와 감정에 의해 고취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욕구와 감정 탓으로 ‘희망에 종속된 과학’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인간은 실제 사실보다도 자신이 진실이었으면 하는 것을 믿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곤란함을 피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의 심오한 부분이나 경험으로 얻은 지혜마저 거부한다. 낯설고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것이 바로 ‘창의성’의 출발점이다!)을 끝끝내 외면한다. 말로는 변화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은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사기를 친다.

“여기까지인 걸 어쩌란 말이야? 난 할 만큼 했다고!”

탐구의 과정은 지루하다. 희망을 구속당하면 괴롭다. 미신은 우리의 생활에 생각보다 깊이 침투해 있고, 나약한 이들은 그에 의존한다. 오만함과 자존심이야말로 진실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가림막이다. 낯선 무엇 앞에서는 당황하게 되고, 그것이 심오하다면 더욱 불편해진다. 너무도 시시하고 사소한 것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간단히 통속적인 견해를 자기 것인 양 수용해버린다. 이 모든 어리석음은 결국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에게 사기를 치는 것이다.

내게 속지 않기 위해서는 헛된 욕망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나를 속이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와 이성의 빛 앞에 노출되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범죄는 항상 어둠 속에서 일어나니까, 이성이 잠들면 기어이 요괴가 눈을 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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