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한가지 메뉴만 고집하는 식당
이장희
발행일 2015.11.20. 11:03
서울의 오래된 것들 (7) 무교동 북엇국집
무교동은 명동, 다동과 더불어 서울 도심 사대문 한복판의 환락지구로 꼽히던 곳이었다. 술집과 음식점이 가득한 이곳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도심 재개발로 말쑥한 현대식 대형 건물들이 들어서며 과거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분주함은 여전히 밤까지 이어진다. 그 사이에서 오롯이 자리를 지켜온 ‘북엇국집’의 내력은 어쩌면 꽤나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최초로 북엇국집을 창업했던 진인범(78) 씨는 본래 음식 솜씨가 남달랐던 요리사였다. 기존의 고깃집에서 업종 변경을 모색하던 중 궁리 끝에 해장국의 대명사인 북엇국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마침내 무교동에 식당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처음부터 한가지 메뉴만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차츰 자리가 잡히고, 입소문이 퍼져 나가 단골이 늘어나면서 북엇국 하나만으로 다른 것을 신경 쓸 틈이 없는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다. 점심식사 때가 되면 가게 앞으로 기다리는 줄이 어찌나 길게 늘어섰던지 주변 가게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줄을 선 손님들이 물을 맞는가 하면, 소금 벼락을 맞는 봉변까지 당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20여 년쯤 두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해오고 있는데, 여전히 변함없이 손님들로 붐빈다. 프랜차이즈에서부터 분점까지 여러 요구와 문의가 있었지만, 아직은 여력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북엇국의 육수가 만들어지고 순환되는 시간은 손님의 회전율과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이 순간을 새로운 가게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찾아온 수십 명의 요리사에게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가게들이 성공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같은 맛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말은 식당 존속의 문제와 직결된다. 북엇국은 그만큼 육수를 끓여내고 온도를 맞추고 유지해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제 문화도 많이 바뀌어 북엇국을 꼭 해장국으로만 생각하며 오지는 않는다. 가족 손님도 늘어났고,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그렇게 손님은 북적거리지만, 사실 원재료와 인건비가 많이 올라 수입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잘 먹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맛이 그대로네요!”라고 인사해주는 손님들 덕분에 다시금 힘이 난다고 한다.
북어란 북쪽에서 나는 물고기를 의미한다. 명태는 그만큼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물고기란 얘기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매년 평균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지금, 바다의 수온 상승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자연스레 명태의 어획량 감소로 이어졌다. 10여 년 전부터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명태의 수급을 이제 러시아 수입산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다.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전통 음식의 대명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머지않아 우리들의 밥상에는 명태뿐 아니라 많은 전통 요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반세기를 지켜온 북엇국집의 국물 맛을 앞으로 얼마나 더 맛볼 수 있을까. 어쩌면 변함없는 맛의 문제가 아니라 존폐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세대가 지난 후에도 북엇국이 해장국의 대명사로 남아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 맛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부터 지켜야 한다는 거창한 사명감이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그래도 우선 북엇국 앞에서는 맛있게 먹어두는 일이 먼저겠지! 나는 국과 밥을 깨끗이 비우고, 다시금 종업원에게 외쳤다.
“여기 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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