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 시험의 신이 네 곁에 있으니까!

최순욱

발행일 2015.11.11. 16:20

수정일 2015.11.26. 13:27

조회 1,044

규성, 또는 괴성을 형상을 묘사한 도자기와 글씨. `괴(魁)`라는 글자의 모양을 따라 한 팔과 한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규성, 또는 괴성을 형상을 묘사한 글씨와 도자기. `괴(魁)`라는 글자의 모양을 따라 한 팔과 한 다리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6) 수험생에게 보내는 편지

수험생 A군과 L양에게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결전의 날이 드디어 하루 앞으로 다가왔네. 11월 12일. 내일이면 수능이로군. 오늘은 예비소집일일 테니, 오늘 수험표를 받을 거고, 아마 고사장으로 가서 미리 시험장과 시험실도 확인하겠지.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예비소집일부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 시험 전의 긴장감과 내일 인생의 한 장이 끝나고 어떤 새로운 것이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부모형제와 친구, 선후배의 응원과 이른 ‘수고했다’는 칭찬이 불러일으킨 흥분, 이런 것들이 뒤섞여서 아랫배가 아픈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반 각성 상태였다고나 할까. 아마 A군과 B양도, 그리고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오늘부터 내일까지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사실 오늘 수험생이 할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아. 오늘 밤을 새서 공부한다고 특별히 나아질 건 별로 없을 것이고, 그저 내일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적당한 공부는 마무리하고 쉬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몇 년 동안이나 힘껏 노력해 왔으니 이제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야겠지. 너무 걱정할 건 없어. 내일은 분명히 시험의 신이 수능을 치르는 내내 곁에 있어줄 거야.

시험의 신이 누구냐고? 아, 말해준 적이 없던가.

옛날 중국에서는 28수(二十八宿)라고 하는 별자리를 사용했어. 요새도 지구과학을 배울 텐데, 거기에 황도(黃道: 태양이 지나는 길)와 천구(天球: 지구를 중심으로 한 천체 좌표계)가 나오잖아? 황도와 천구의 적도 주변에 있는 28개의 별자리를 28수라고 불렀던 거지. 동·북·서·남의 방위에 따라 청룡, 현무, 백호, 주작의 사신(四神)이 각각 7개씩의 별자리를 주관하고, 각 별자리(宿)에는 또 여러 별자리가 속한다고 해.

이 28수 중에 규성(奎星)이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이게 바로 시험의 신이라고 해. 지금 별자리로는 안드로메다자리의 ‘제타’라는 별이라고 하더라고. 원래는 북두칠성의 일곱 별 중 하나인 문창성(文昌星)이 문창제군(文昌帝君)이라는 학문의 신으로 신격화됐는데, 당나라 이후 과거 제도가 점점 강화되면서 ‘으뜸’이라는 뜻을 가진 ‘규’라는 이름의 별이 문창제군의 분신이자 특히 과거 응시생들의 수호신처럼 되었다는 거지. 이런 믿음은 특히 ‘규’라는 글자가 과거와 관련해 많이 사용되었던 ‘괴(魁)’라는 글자로 변형되면서 더 강해졌다고 하네. 한자가 여러 개 나오면서 좀 복잡한데, 어쨌든 규성은 괴성이라고도 하는 별인데 학문의 신인 문창제군의 분신으로서 과거나 수능 같은 시험을 관장한다는 거야. 아, 이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간한 학술지인 ‘미술자료’ 제84호에 실렸던 ‘괴성 도상의 기원과 전개(배원정, 2014)’라는 논문에 실려 있으니까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논문을 더 찾아보길 바라. 상당히 재미있어.

우리나라에도 이 규성하고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이규보(李奎報) 알지? 그래그래,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그 사람이야. 고려 무신정권 시기 문인으로 동국이상국집하고 동명왕편을 쓴 사람. 잘 알고 있네.

원래 이 사람의 이름은 규보가 아니라 인저(仁氐)였다고 해. 이인저가 어릴 때는 수재로 이름이 높았는데, 정작 과거에는 세 번이나 낙방했나봐. 그러다가 네 번째로 과거에 응시를 했는데, 시험을 보러 가지 며칠 전에 꿈을 꿨다네. 꿈속에서 노인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에 누가 이들이 28수라고 알려줬다는 거지. 그래서 이양반이 꿈에서 제일 가까운 노인한테 “제가 이번에 과거에 붙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이 사람이 다른 쪽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면서 “저기 있는 규성(奎星)이 알걸세”라고 대답했다네. 그래서 규성한테 다가가서 다시 같은 질문을 했는데, 미처 대답을 듣기 전에 잠에서 깨 버렸다는 거야! 얼마나 아쉬웠겠어. 그래도 복이 있었는지 다른 날 다시 이 노인이 꿈에 나타나서 “자네는 꼭 장원 급제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다만 이를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면 안되네”라고 했다더군.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이인저는 정말로 과거에 장원으로 붙었어. 그래서 이름을 ‘규성(奎)이 알려줬다(報)’는 뜻의 ‘규보(奎報)’로 바꿨다고 하네. 이렇게 역사에 남는 문장가이자 문인이 된 이규보가 등장한 거지. 어때, 재미있는 이야기지?

이런저런 얘기를 좀 길게 했는데, 덕분에 긴장이 좀 풀어졌는지 모르겠네. 아까도 말했듯이 내일 시험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는 않았으면 해. 마음 편히 먹고 평소처럼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야. 그리고 분명히 규성이 도와줄 거라고! 이규보가 장원을 한 것처럼 좋은 일도 생기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야. 행운을 빌어! 다음에 또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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