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에서 출발하는 글쓰기의 5단계

강원국

Visit1,167 Date2015.11.09 15:50

나뭇잎ⓒaandd

강원국의 글쓰기 필살기 (5) 관찰한 만큼 보이고, 보인 만큼 쓸 수 있다

해외여행을 가면 그 지역 미술관에 들러보는 걸 즐긴다.
하지만 아내는 지루해 하는 편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처음에는 누가 그렸는지, 제목이 뭔지, 무슨 내용인지만 궁금했다.
그러다 작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어느 시대, 어떤 배경에서 그림이 탄생 했는지까지 눈길이 갔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알고 싶어졌다.
시기별 화풍과 작가의 기법에 관해 공부하고 싶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든가.
대학을 졸업하고 ‘유공’이란 회사에 원서를 냈다.
당시 주유소를 가장 많이 가진 정유회사였다.
원서를 내기 전까지는 그 회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였다.
차도 없고 면허증도 없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원서를 접수하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면접을 하고 그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온 세상이 유공 천지였던 것이다.
사거리마다 보이는 것은 온통 유공 주유소였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공 간판만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에는 몇 개의 세계가 있을까.
나는 쉰 중반까지 홍보, 연설, 출판의 세계를 경험했다.
몸담고 있던 조직을 기준으로는 증권사, 청와대, 대기업 비서실 등을 다녀봤다.
고작 열 개 미만의 세계를 경험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수천, 수만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택시운전, 편의점 운영, 화가, 은행원 등 직업의 세계에서부터 낚시, 등산 등 취미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세계는 각각이 하나의 우주다.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어마어마한 세계가 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몇 안 되는 세계를 체험한다.
나머지는 자신이 경험한 세계로 유추할 뿐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 하려다 보니 구체적이지 않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편견과 오해, 선입견,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아는 길은 관찰뿐이다.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한다.
들여다보면 거기에 오묘한 세계가 있다.
알면 알수록 더 궁금해지고 파면 팔수록 더 깊이가 느껴지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글을 쓰려면 쓸 대상이 있어야 한다.
쓸 사람, 쓸 사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관찰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다.
없는 세상이다.
보는 것만 실재하는 세계이고, 글쓰기의 대상이 된다.
고유의 느낌과 독창적인 생각을 만드는 출발점은 관찰이다.

관찰과 글쓰기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글로 옮겨보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묘사라고 한다.

2단계는 느낌을 말하는 단계다.
감상을 쓰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강요받아 왔다.
각종 기념일 글짓기 대회 때마다 느낀 점을 쓰라 했다.
느낌이 없어도 써야 했다.
일기나 독후감 역시 마무리는 감상이었다.

3단계는 분석적으로 관찰하는 단계다.
나름의 시각과 관점, 해석, 그리고 해법을 쓴다.
회사에서 쓰는 보고서, 각종 칼럼이 여기에 해당한다.

4단계는 내 주관과 기준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비판하는 단계다.
삐딱하게 관찰한다.
통념에 휘둘리지 않는다.
비평, 논증 등을 쓸 때 활용한다.

마지막 단계는 없던 세계를 창조하는 단계다.
보이는 것 그 너머를 보는 것이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이다.

시인 장석주는 <대추 한 알>을 보고 이렇게 썼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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