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오늘도 두렵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11.06. 17:09

수정일 2015.11.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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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accede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온 세상이 두려운 곳이 되고
세상물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일생이 모두 꿈속이 된다.
不近人情, 擧世皆畏途
不察物情, 一生俱夢境
--진계유, 《소창유기(小窗幽記)》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8

자식이 부모를 닮듯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닮는다. 학교에서 배운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는 이론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태초에 선하거나 악하게 태어나서라기보다, 제가 살기에 편편한 방향으로 착해지고 제가 살아남기에 구구한 방식으로 악해진다. 타인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선의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선(善)의 아름다움에 영원히 눈감을 수 없고, 타인의 까닭모를 적의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악(惡)의 실체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리하여 자기가 아는 바대로 행한다. 선을 경험한 사람은 선으로, 악을 경험한 사람은 악으로 자신이 받은 선행이나 악행을 세상에 갚음한다.

나쁜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보면 세상이 점점 나쁘고 아프게 변해가고 있나 보다. 타인에게 공감하기보다는 차이를 끄집어내 차별을 만들고, 서로 기댈 무리를 짓는 일조차 힘겨워 분열하고 또 분열한다. 이처럼 서로에게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는 시대는 ‘헬조선’이라는 무시무시한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언어는 마치 생물처럼 나고 살고 죽는다. 그리고 그 삶의 여로는 고스란히 사회의 변화를 따른다. 그러니 왜 그런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단어를 왜 쓰느냐고 탓하기 전에 자신이 사는 바로 이곳을 헬(hell), 지옥으로 느끼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경제적 요인이나 정치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모두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단순하면서 좀 더 근본적으로 현재를 공포로 느끼는 까닭은 미래의 예측가능성이 사라진 데 있지 않나 싶다. 알 수 없음. 한 치 앞을 모른 채 어둠 속을 걷노라면 발걸음은 지칫거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 하나에도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다.

이토록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초고속 인터넷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에, 여전히 무지의 공포에 시달린다는 것 자체가 기묘하다. 하지만 정보의 포화 상태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세상물정 또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충 알거나 엇비슷하게 알거나 넘겨짚어 알 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것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세상물정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편견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외롭고 두렵다.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관계를 맺는 일이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각각이 고립된다. 초식동물처럼 약한 존재들에게 고립은 곧 죽음이다. 세상물정을 알지 못하면 그대로 세상의, 지배자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노예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한다. 기실 고단한 세상 속에서 참 사람은커녕 그냥 사람으로 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짧고도 긴 한 생애가 고스란히 취생몽사(醉生夢死),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꿈속에서 살고 죽듯 흐리멍덩하게 왔다 가는 일이라면, 굳이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무엇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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