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동안 달성하기가 영 쉽지 않은 것

최순욱

발행일 2015.11.04. 17:05

수정일 2015.11.26. 13:29

조회 763

단풍ⓒiorora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5)

최근 십여 년 간 요새만큼이나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또 있었을까 싶다. 저성장 경제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과 일자리가 있는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하고, 매일 지면과 방송을 도배하듯 채우는 온갖 싸움과 비리에 대한 이야기는 보고 있자니 답답하다. 게다가 주변 나라들도 약진해 우리나라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지나치게 자조적이란 점을 제외하면 ‘헬조선’이나 ‘지옥불반도’란 표현이 꽤 적절하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고대 사람들도 이 문제를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먹고살기가 더 팍팍했을 테니 더욱 그랬겠지. 고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좋은 사회의 조건에 비추어 지금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힌두교 경전 리그베다에 루브, 바쟈, 부브하반이라는 3형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들은 감히 따를 자가 없는 놀라운 솜씨의 대장장이였다. 이들의 작품이 워낙 출중하다보니 신들은 이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했고, 여기에서도 신들을 놀랍게 해 마침내 삼형제 모두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 이들은 신이 된 후에 가장 중요한 세 신에게 선물을 하나씩 줬는데, 먼저 우주의 창조자이자 후에 다른 모든 신들의 스승이 되는 브리하스파티에겐 소를 한 마리 줬다. 이 소는 모든 제사와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다. 두 번째로 번개와 벼락을 던지는 전쟁의 신 인드라에겐 그의 전차를 끄는 절대 지치지 않는 두 마리의 말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농경과 풍요, 의술을 관장하는 쌍둥이 신 아슈빈에겐 바퀴가 세 개 달린 마차를 선물했다. 바퀴가 세 개였던 것이 아니라 앉을 자리가 세 개 있거나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 마차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켈트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투아하 데 다난’이라는 신족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장 중요한 세 신이 각각 소유했던 놀라운 보물에 대한 것이다. 뛰어난 통솔력으로 첫 번째 왕이 된 누아자 아케트라브는 일단 칼집에서 뽑혀 나오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마법의 칼을, 광명의 신이자 싸움의 명수인 루 라바다는 그 앞에서 어떤 싸움도 종결되는 마법의 창을, 대식가이자 호색한이며 놀라운 마법사인 다자 모르는 끊임없이 음식이 나오는 마법의 냄비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가진 세 보물은 리아 파르라고 하는 마법의 돌과 함께 다난 족의 네 가지 보물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리아 파르는 정당한 왕이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대관식에 서면 큰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두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세 신들이 소유한 보물들이 각각 가리키는 것은 대체로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브리하스파티의 소는 제사와 의식을 통해 종교적인 권위를 세울 수 있게 해 준다. 누아자의 칼도 리아 파르와 함께 권위, 정당성을 의미한다. 인드라의 말은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하는, 세계와 구성원을 지키는 힘이다. 모든 싸움을 끝내버릴 수 있는 루 라바다의 창도 힘이다. 나머지 보물은 배부르게 먹고살 수 있는 풍요와 관련된다. 아슈빈이 가진 마차는 최초의 완전한 수인 ‘3’으로써 풍요를 나타낸다. 음식이 끊임없이 나오는 다자 모르의 냄비는 풍요가 아닌 다른 것과 연결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니까 고대 사람들은 정당한 권위가 세워지고, 구성원이 외부의 적에 위협받지 않으며, 배를 곯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바람직한 사회의 조건은 지금 시각에서 보면 너무 단순한 감이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유효성이 다한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우리가 어떤 이유에서건 서로 싸우고, 시기하는 원인의 근본을 따져 보면 아직 충족되지 못한 이 세 조건으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이를 달성하기가 영 쉽지 않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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