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연습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10.30. 13:29

수정일 2015.11.26. 13:30

조회 485

노을ⓒ 뉴시스

계속해서 태양을 바라보아라, 그러면 그림자를 볼 수 없을 것이다.
(Keep your face to the sunshine and you cannot see a shadow.)
-헬렌 켈러(Helen Keller)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7

얼마 전 어느 잡지의 기획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뒤풀이로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가 조금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인터뷰어는 아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이,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 있던 사람인데, 인터뷰 녹음을 푸는 과정에서 특이한 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모든 답변을 ‘노우(no)’로 시작하시더라고요.”

어떤 질문이든 일단 아니라는 부정의 대답으로 시작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습관이 있다는 지적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긍정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부정적인 반응이 특징적으로 보일 만큼인지는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리얼리즘의 기초는 불신이라고, 직업적인 특성을 앞세워 변명할 수도 있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믿지 않는 편이다. 세계의 정합성도, 인간의 이성도, 사회의 도덕과 제도도, 관계의 약속도, 말하자면 삶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것이다. 확고하지 않기에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틈을 포착해 파고드는 것이 문학의 작업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건 그와 별개다. 부정적인 태도는 대화를 가로막기 십상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해도 헤아려 자세히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의식과 별개로 습관이 된 부정의 대답은 고집스러운 내면의 표식이다. 아무리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어도 절대 내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완고함이 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은 말랑말랑해야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렇다. 최소한 그것을 알고 있기에, 반성 속에서 조금은 긍정적인 태도를 ‘연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날로 강퍅해지는 삶 속에서 억지 긍정은 현실 도피일 뿐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림자를 안다는 것과 그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내 어둠에 갇힌 채로는 상대방의 그림자조차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언젠가 졸작 《불의 꽃》에서 이렇게 썼다.

“불행을 경쟁하지 마라! (중략) 불행을 경쟁하노라면, 너도 모르게 이기고 싶어질 것이다. 설령 그 승리의 조건이 더 큰 불행일지라도.”

한때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에 대한 반론으로 긍정적 사고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를 논파한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무비판적이고 무조건적인 긍정은 종교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긍정을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에 가두다가는 자칫하면 불행을 서로 경쟁하는 지경에 이른다.

헬렌 켈러는 외부적으로 가장 불행하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하기에 그녀가 설파하는 긍정은 어설픈 타협이 아니라 치열한 삶의 투쟁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말한다. 그림자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태양을 바라보아야 함을, 부정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는 긍정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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