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고가와 세계수(世界樹) 이그드라실

최순욱

Visit850 Date2015.10.28 16:04

북유럽 신화의 아홉 세계를 연결하는 세계나무 이그드라실

북유럽 신화의 아홉 세계를 연결하는 세계나무 이그드라실

최순욱과 함께 떠나는 신화여행 (4)

나는 서울 토박이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여태까지 서울에서만 살아왔다. 몸을 담았던 모든 학교와 직장 역시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생활 반경이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이런저런 서울 소식에 관심을 갖는 건 아마도 매우 당연한 일이지 싶다.

최근 눈에 들어온 된 서울 소식은 이른바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이다. 서울시는 1970년대에 주로 세워져 노후화된 서울역 주변의 고가도로를 시민들이 걸어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원으로 꾸미겠다고 한다. 교통이나 경관 같은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지만, 사업 추진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는 확고한 듯하다.

사실 이 사업과 관련해 내가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공원의 기본구상안이다. 여러 세계적인 건축, 공간전문가들에게 공모한 결과 최종적으로 비니마스라는 분의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고가를 공중정원(空中貞菀)으로 조성하면서 서울역 고가를 하나의 큰 나무로, 램프는 나뭇가지로 비유해 남대문 시장 등 주변 지역과 17개 보행길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구상이다. 나는 이 구상을 처음 들었을 때 ‘꽤 그럴듯하다’고 무릎을 쳤다. 비니마스의 구상이 가진 아름다움, 또는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북유럽 신화에서 ‘이그드라실(Yggdrasil)’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비니마스의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 구상도

비니마스의 `서울수목원(The Seoul Arboretum)` 구상도

고대 북유럽 사람들은 우주가 아스가르드, 바나헤임, 스바르트알프헤임, 미드가르드, 요툰헤임, 니다벨리르, 스바르트알프헤임, 헬, 니플헤임의 아홉 세계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홉 세계는 모두 이그드라실이라고 하는 거대한 물푸레나무로 연결되어 있다. 이그드라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셋으로 갈라진 커다란 뿌리인데, 이것들은 각각 아스가르드와 요툰헤임, 그리고 니플헤임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또 하늘 끝까지 뻗은 수많은 가지가 다른 세계에도 닿아 있기 때문에 아홉 세상이 이 나무에 안겨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아홉 세상이 이그드라실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 알 뿐, 이 나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모른다. 이그드라실은 원래부터 있었으며 세계가 몰락하고 나서도 살아남을 불멸의 나무다.

이 나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자. 이그드라실의 세 뿌리 아래에는 샘이 각각 하나씩 있다. 신들의 세계인 아스가르드에 내린 뿌리 곁에는 운명의 여신인 우르드의 샘이 있다. 이 샘은 워낙 성스럽기에 이 물에 닿은 건 모두 하얗게 변한다고 한다. 신들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이곳에 모여 위해 회의를 하기도 한다. 우르드는 자매이자 역시 운명의 여신들인 베르단디, 스쿨드와 샘 옆에 지어진 집에 산다. 세 여신의 임무 중 하나는 샘에서 물과 진흙을 길어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그드라실을 적신 물이 지상으로 떨어지면 꿀이 된다.

두 번째 뿌리는 거인들의 땅인 요툰헤임으로 뻗어 있다. 이 뿌리 옆에 있는 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거인인 미미르의 샘이다. 미미르가 지혜롭게 된 것은 모든 지식과 지혜가 담긴 이 샘의 물을 매일같이 길어 마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오직 미미르가 허락했을 때만 샘물을 마실 수 있다.

마지막 뿌리는 안개와 냉기로 가득찬 세계인 니플헤임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 뿌리 밑에는 열한 개의 강이 시작되는 샘인 흐베르겔미르가 있다. 근처에는 니드호그라고 하는 용과 수많은 뱀들이 살면서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줄기차게 갉아먹는다. 하지만 이그드라실의 뿌리에선 생명의 기운이 결코 마르지 않기 때문에 끊어지는 뿌리만큼 새로운 뿌리가 자라난다.

이그드라실의 가지 속에는 네 마리의 사슴도 살고 있다. 사슴들은 가지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파리와 꽃봉오리를 따 먹는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금방 새 잎이 솟기 때문에 이그드라실의 푸른빛이 옅어질 일은 없다.

다른 짐승들도 있다. 이그드라실의 가장 높은 가지에는 지혜로운 독수리가 있는데 이 새의 눈 사이에는 날씨를 다스리는 매가 앉아 있다. 가지를 타고 니드호그와 독수리 사이를 계속 오르내리는 다람쥐도 있는데, 이 녀석은 용에게는 독수리의 험담을, 독수리에겐 용에 대한 좋지 않은 말을 전하며 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데 열심이다.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아닌가. 생과 사, 다툼과 화해가 절묘하게 얽혀 있다. 한쪽 뿌리는 괴물들에게 끊임없이 공격당하지만 다른 쪽 뿌리는 여신의 보살핌을 받는다. 줄기와 새 순이 뜯어먹혀도 그 자리에는 바로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이그드라실은 고대인들이 나무에 품은 경외감을 그대로 표현한 결과일 것이다. 여름과 가을에 걸쳐 녹음과 과실을 자랑하던 나무는 맹렬한 겨울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을 맞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신록을 맹렬하게 발산한다. 고대인들에게 이 이상으로 신비로웠던 것도 많지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열매와 거처, 도구의 재료까지 제공해주는 나무를 생명의 근원이자 순환하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런 나무의 이미지는 세계 도처의 신화에서 나타난다. 단군이 내려온 태백산에 있었다는 신단수(神壇樹)도 이런 것 중의 하나인데, 신화학자들은 세계의 중심이자 생명, 자연을 상징하는 이런 나무를 생명의 나무, 우주목(宇宙木), 세계수(世界樹) 등으로 부른다. 이그드라실은 대표적인 세계수다.

나는 비니마스가 서울수목원 구상안에 이그드라실, 또는 세계수의 이미지를 투영했다고 생각한다. 구상과 실제가 다른 면이 분명히 있지만, 적절하게 실현되기만 한다면 공중에서 보았을 때 아마도 주변 구역들이 수목이 풍성하게 심어져 거대한 나무처럼 된 고가에 폭 둘러싸이거나 서로 연결되는 형상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홉 세계와 이그드라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그 주변과 공원을 오가는 시민들도 이그드라실 안팎의 동물들처럼 서로 생명을 교환하면서 조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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