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은 시민의 말씀 잘 듣겠다는 마음가짐”

일자리기획단

Visit630 Date2015.10.27 09:00

지난 10월 7일 출발한 서울일자리대장정이 24일 현재, 75곳에 달하는 일자리 현장을 찾았습니다. 현장마다 체험하고 듣고 토론하고 제안이 오간 생생한 뒷얘기가 풍성합니다. 바쁘기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서울시장을 비롯해 담당부서 관계자들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거의 한 달간 집중적으로 서울 전역을 훑고 다니는 일은 전례가 없는 일인지라 시민들의 관심도 높습니다.

빨간펜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빨간펜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원순씨 수첩이 궁금해요~”

그런데 일자리 논의와 별개로 서울일자리대장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주고받는 ‘화제(話題)’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들과 함께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제안 하나하나에 대해 답변하는 모습입니다. 한두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간담회부터 토론회, 타운홀 미팅에 이르기까지, 일자리대장정 전체 일정에서 확인되는 박 시장의 ‘자세’에 대해 인상적이라는 평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원순씨의 수첩’입니다. 한 블로거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박원순 시장님은 메모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교육생들의 건의사항을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모습입니다. 여담이지만, 어떻게 메모를 하기에 사소한 것 하나까지 떠올려 언급할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박 시장님이 메모하는 방법에 대해 강의하면 꼭 참여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시민의 제안이나 발표를 들으면서 꼼꼼하게 메모하는 모습에 시선이 가더라는 시민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의 궁금증 해소 혹은 AS 차원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수첩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수첩에 기록한 간담회 내용

박원순 시장이 직접 수첩에 기록한 간담회 내용

메모 비법 강의? 언제든 가능!

-서울일자리대장정 과정에서 만난 시민 가운데 원순씨의 ‘수첩신공’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메모 비법 강연하시면 꼭 참여하고 싶다는 분도 있는데, 하실 의향은?

=그래요? 원하시면 언제든 할 수 있죠. ‘저술가 되는 법’을 주제로 강의하러 다니기도 했어요. 메모를 잘 정리하면 저술, 곧 책이 되잖아요.

-수첩을 사용하는 이유는?

=사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더 편해요. 그런데 이런 기기를 사용하면 다른 일 하는 줄 아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다시 수첩을 쓰는 게 좋겠다 해서 사용하는데, 쓰다 보니 자기 말을 경청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상호존중, 신뢰가 더 생기는 느낌을 받아요.

-어떻게 메모하기에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떠올려 답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께 메모 비법을 알려주신다면?

=무엇보다 우선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잘 듣는 겁니다. 보여드릴까요? 오늘이 2015년 10월 23일 밤 7시. 그 옆에 오늘의 핵심인 ‘바보야 유통이야’를 썼어요. 그리고 패널 분들의 주요 발언을 메모하는데, 이때 늘 제 생각을 함께 정리합니다. 현실성은 있을까, 저건 요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내용이에요.

물론 형식은 나름대로 다 달라요. 키워드를 적을 때가 있고, 특히 중요한 건 빨간색으로 쓰기도 해요. 그림을 그리거나, (생각그물인 마인드맵 같은) 여러 개의 도형 형태로 정리할 때도 있고. 그래서 수첩 왼쪽 면과 오른쪽 면을 순서대로 쓰지 않고 펼침면으로 메모하는데,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글씨가 달라지기고 하고.

서울일자리대장정에 참여한 시민 사이에서는 소소한 것까지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박원순 시장의 ‘수첩’이 인상적이라는 얘기가 많다.

서울일자리대장정에 참여한 시민 사이에서는 소소한 것까지 빠뜨리지 않고 언급하는 박원순 시장의 ‘수첩’이 인상적이라는 얘기가 많다.

메모 비법은 잘 듣기와 내 생각 더해 편집하기

-잘 들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이디어까지 더하는 메모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누가 처음부터 잘하나요? 오랜 시간 하다보니까 쌓인 겁니다. 그 전에도 바로바로 정리했는데, 2006년부터 거의 3년 동안 봉고차 한 대에 운전기사, 사진작가 등 4명이 1조가 되어 수시로 전국의 ‘베스트 퍼포먼스’ 지역을 찾아다녔어요. 한 번 떠나면 한두 개 지방도시나 군에 2박3일이나 3박4일 동안 머물며 신나게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거나 특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관계자들을 만나는데, 그때 나눈 이야기를 노트북에 속기로 거의 다 적어요. 뭐든 잘하는 사람한테 배우는 게 최고니까.

대신 말이 곧 문장은 아니니까 중간중간 끊으며 정리하고, 간혹 주제와 벗어나는 얘기가 오가는 동안 문장을 다듬고 제목도 붙이죠. 인터뷰를 마치면 기록도 끝나요. 그 기록을 출판사에서 한 번 다듬어 4권의 책으로 냈어요. <마을이 학교다> <생태적 사회> 등이 그때 나온 것들이에요. 원래 10권을 목표로 했다가 시장이 되는 바람에 나머지는 아직 빛을 못 보고 있어 안타까워요. 이 과정에서 메모하는 능력이 더 길러졌을 거예요.

-기록 속도도 엄청 빠르겠습니다.

=다시 정리할 시간이 없으니까 집중해서 듣고, 적어야 하니까 빨라질 수밖에 없죠. 외국인과 인터뷰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타도 한타와 비슷한 속도예요.

-기록하는 습관은 언제부터였는지요?

=기록은 스크랩과 쌍인데, 주제별로 스크랩하고 정리하는 일은 대학 때부터 해온 오래된 취미예요. 그거 잘 해놓으면 책 한 권 쓰는 건 일도 아니에요. 스크랩 과정에서 이미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체계를 세워야 하고, 뭐가 부족하고, 어떤 것을 강조하고 개선하면 좋을지 정리가 딱 됩니다.

전에는 밤새 외국에서 온 자료나 잡지도 전부 스캔해서 스크랩했는데, 여행 카테고리에만 관련 주제가 1000개쯤 됐어요. 스크랩은 시스테믹(systemic)하게 사고하고 실행할 수 있는 힘을 키워줘요. 충실한 기록은 사관이 하는 일이고, 사회혁신가의 메모는 달라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까지 더해 편집한 창조적 메모여야 합니다.

-수첩 사용량은?

=이번 일자리대장정 기간 동안 쓴 두 번째 수첩인데, 이것도 다 썼네요. 평소 이 정도면 한 달 가량 씁니다. 헤아려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쓴 건 수백 권 되겠죠.

-특별한 수첩 취향이 있으신지?

=취향은 따로 없고, 다만 헷갈리지 않으려고 색깔을 바꿔가며 선택합니다.

간담회에서 메모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모습

간담회에서 메모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모습

“시장님 수첩 좀 잃어버려 주세요?”

이어진 질문은 수첩 분실 경험이었습니다. 기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소유자인 만큼 수첩 분실이 초래한 후유증도 크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에서 일할 때 일본 출장에서 한 번, 중국 출장에서 한 번, 총 2번의 분실 경험을 전했습니다.

그때 함께 자리하고 있던 정책비서관으로부터 재미있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에게 ‘시장님께 수첩을 잃어버렸다고 해 달라’는 로비가 가끔 들어오기도 했다는 겁니다. 실제로 ‘원순씨 수첩’은 수많은 시민들과의 약속이 담긴 ‘시민수첩’이지만 공무원들에겐 ‘과로수첩’이기도 합니다. 수첩이 ‘시장 요청사항’, 곧 일거리의 보고이니 분실을 핑계로 ‘일폭탄’을 피해보고픈 공무원의 ‘진심 섞인’ 농담이었던 겁니다.

물론 수첩이 사라진 적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박 시장이 웃으며 말합니다.

“요거 하나 바꾸면 시민들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싶으니까 요청이 많아져요. 직원들 힘든 거 알죠. 그래서 내년부터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는 안하려고 해요. (좀 뜸을 들이다) 그래도 전혀 안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죠? (일동 폭소)”

-마지막으로 ‘수첩의 힘’에 대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수첩은 마음가짐이랄까요. 이걸 펼치는 순간 기본적으로 허리를 딱 펴고 앉는 자세가 달라져요. 상대와 눈을 마주치고, 경청하고, 끊임없이 두뇌활동을 하겠다는 마음이 수첩에 적히는 겁니다. 결국 마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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