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70년만의 귀향

시민기자 최은주

발행일 2015.09.21. 13:22

수정일 2015.09.21. 17:53

조회 1,020

지난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70년만의 귀향` 추모식

지난 1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70년만의 귀향` 추모식

지난 12일 인기 TV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는 하하와 서경덕 교수가 하시마섬에서 강제 노동 중 희생당한 조선인 유골이 묻힌 다카시마의 공양탑을 찾아 가는 장면이 방송됐다. 일본인 공동 묘지의 어느 한 구석, 잡초에 가려 입구조차 찾기 어려운 공양탑을 찾아 그들이 그렇게 먹고 싶었던 흰 쌀밥과 고깃국을 올리는 장면은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방치됐던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그러나 강제노동에 끌려가 굶주림과 중노동에 시달리다 이역에서 눈을 감은 조선인들이 하시마섬에만 있던 건 아니었다.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 지역에도 탄광이나 댐건설 등에 동원돼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며 절망감에 하루하루를 견디다 눈을 감은 조선인들이 있다.

강제노역으로 희생된 115구의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강제노역으로 희생된 115구의 유골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광복 후 70년 만에야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과 일본 민간단체는 지난 1997년부터 홋카이도 전역에 흩어져있던 희생자 유골을 발굴해 수습했고, 희생자의 유골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했다. 그 결과 115구의 유골이 유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지난 19일 저녁 7시, 서울광장에서는 2천여 명의 유족, 시민이 모인 가운데 광복 70년 만에 강제노동 희생자의 장례식이 엄숙하게 거행됐다. 115명의 자원봉사자에 의해 하얀 보자기에 싸인 유골함이 장례식장으로 들어서자 서울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의를 표했다.

정병호 한양대 교수의 축문

정병호 한양대 교수의 축문

‘강제노동희생자 추모ㆍ유골 귀환 추진위원회’의 한국 측 대표인 정병호(60) 한양대 교수의 축문(祝文)에 이어 일본 측 대표인 도노히라 요시히코 스님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 봉안해 온 유골은 극히 일부다. 양국이 협력하여 하루라도 빨리 남은 유골 돌아오길 바란다”며 양국의 협조를 촉구하는 한편, 일본의 안전보장 관련 법안 통과를 언급하며 “일본의 젊은이들은 총을 쥘 것이 아니라 희생자 발굴을 위한 삽을 쥐어야 한다.” 

이 행사를 후원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추도사에서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죄의 말로 입을 뗐다. 그러면서 “아직 일본 각지에서 돌아오시지 못한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서울시는, 서울시민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귀향을 기다립니다”라며 “저희들이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을 맺었다. 이들의 넋은 20일 경기도 파주 서울시립묘지에 안장됐다.

추모식에 참석한 유족들

추모식에 참석한 유족들

115구의 유골이 돌아온 것에 비해 참석한 유족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징용에 끌려 간데다 70년이란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장례식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며 혹독히 스러져간 아버지를, 삼촌을 애도했다. 김설옥(73세) 할머니는 남편과 나란히 앉아 장례식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추도하며 입을 뗐다. “아버지가 떠난 게 1살 때라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젊은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팠는데, 이젠 명절 때 찾아갈 곳이 생겨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날은 NHK를 비롯한 많은 방송들이 김 할머니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며 취재경쟁을 벌였다.

취재진들이 유족들을 취재하고 있다

취재진들이 유족들을 취재하고 있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이번 봉환 행사가 너무 늦었다며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과 봉환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백기 만장을 앞세운 115구의 유골함은 장례식장을 떠나 임시 안치소인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향해 갔다. 수많은 시민들이 뒤따랐다. “달아, 높이나 올라 내 넋이라도 고향 마당에 뿌려라” 정태춘의 징용자 아리랑이 어디선가 새어나왔다.

한편 추모식이 펼쳐지던 서울광장 근처 서울도서관에서는 홋카이도 강제노동 희생자에 대한 사진전이 9일부터 20일까지 펼쳐졌다. 1997년부터 17년간 진행된 유골 발굴의 역사적 과정을 기록한 사진작가 송승현 교수의 ‘삶의 역사: 70년만의 귀향’ 사진전 그것이다.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서울도서관 `70년만의 귀향` 사진전

지난 9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서울도서관 `70년만의 귀향` 사진전

같은 날 서울도서관을 방문해,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좌절과 절망 속에서 걸었던 죽음의 길마다 슬픔으로 얼룩진 사연들을 볼 수 있었다. 또, 버려진 밀감 껍질이나 채소 찌꺼기 따위를 주워 먹으며 고된 노동을 했던 오사카 시다바니 조선소 노동자 이야기나 영하 41.2도 혹한의 땅 슈마리나이에서 추위에 배고픔에 떨어야 했던 고통의 날들을 대형 안내판에서 만날 수 있었다. 로비 2층에서부터는 유골과 유물 발굴 현장 사진과 칫솔, 동전, 집게 등 유물도 전시됐다.

강제노동 희생자의 유골 발굴 과정들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강제노동 희생자의 유골 발굴 과정들이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다

이번 사진전과 추모식이 강제징용으로 희생된 넋을 기리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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