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있는 그대로 놓아두면 그뿐!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9.18. 15:56

수정일 2015.11.16. 05:43

조회 921

동산ⓒ동쪽에별

다듬지 않은 통나무를 쪼개면 그릇이 된다.
성인은 이를 사용하여 지도자가 된다.
하지만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는 자르는 일을 하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 제28장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2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이른바 오지라고 불리는 산골 깊숙이 은둔해 사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남들이야 뭐라든 나물 먹고 물마시며 ‘자연인’으로 사노라 한다. 어쨌든 (흔히 ‘정상’과 혼돈되는) ‘보통’의 궤도를 벗어나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한 그들의 모습에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일절이 언뜻 겹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오죽하면 그리 떠났을까, 오죽하면 그리 숨었을까. 각각이 다른 사연이야 제쳐두더라도 세상의 환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마음만큼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가슴 한가득 비탄과 분노를 품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미워하는 도시는 화려한 문명의 혜택만큼이나 쓰라린 상처를 준다.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경쟁하고 짓밟고 오르며, 우리는 바늘 끝에서 간신히 서로를 딛고 산다.

나는 산골에서 도시아이처럼 자랐다. 골짜기 마을에서 살며 배를 타거나 농사를 짓는 부모를 두었던 친구들과 달리 부부교사인 부모와 함께 비탈 꼭대기의 학교 관사에서 살았다. 도시로 돌아와서는 산골에서 온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녔다. 그렇게 ‘이곳’에서 ‘이렇게’ 살지 못하고 ‘저렇게’ 살다 보니, 도시도 산골도 서름하기만 하다. 산골을 그리워하면서도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도시에서도 멋들어진 도시인처럼 살지 못한다. 도시도 무섭지만 산골도 무섭다. 그리하여 두려움과 게으름으로 오도 가도 못할 때, 맥없이 노자를 펼쳐 읽으며 내가 떠나왔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곳을 그리워한다.

가능성과 잠재력이란 말은 누군가에 대한 격려이자 희망이다. 그런데 여기에 노력하면 반드시 이룬다는 신화가 결합하여 ‘그저 보통의 존재’인 개인에게 압박과 부담이 된다. 다듬지 않은 통나무, 다듬지 않은 원석을 그릇으로 만들고 보석으로 빛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지금껏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세상을 지배해 왔다. 여전히 그 의미가 사라질 수야 없겠지만,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쳤다. 가능성과 잠재력 따위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노오력’하라고 채찍질하지만 말라고, 비명을 지르며 산골이든 어디로든 도망치고파 한다.

애초에 ‘자연보호’니 ‘녹색성장’이니 하는 말 자체가 어이없는 모순형용이다. 자연은 애초부터 스스로 그러한 것이기에, 보호할 대상도 성장시킬 대상도 될 수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놓아두면 그뿐!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진대, 분명 그러할 터인데, 제아무리 아름답게 쪼개고 신묘하게 자른 데도 본래의 그것보다 얼마나 나을까? 원치 않게 통나무와 그릇이 되어 썰리고 잘리는 삶이 저릿저릿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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