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이냐 지옥이냐, 공생이냐 공멸이냐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9.04. 13:17

수정일 2015.11.16. 05:42

조회 716

함께ⓒ사월

어느 신부님이 농담으로 말씀하시기를, “요즘 천당에 갈 수 있는 표 중에 개인 티켓은 매진되고, 단체권밖에 남지 않았다.”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자기 혼자만 살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개인 티켓은 다 팔리고, 이제 세상 사람들이 선한 생활을 함께 해서 모두 천당에 가든가, 아니면 계속 핵무기를 생산하고 지구를 오염시켜서 지옥으로 직행하든가 하는 일만 남았다.”라는 것이다.
-- 김영 《인문학을 위한 한문강의》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90

나이차가 존시간에 가까운 선배님께 ‘후배님께’라는 서명이 적힌 책을 선물 받았다. 한때 나는 선배고 후배고 모르던 방자한 인간이었지만, 이제 조금은 철이 나려는지 어쩌는지 좋은 선배와 후배를 만나면 뒷배를 얻은 듯 든든하다. 여기서 뒷배란 학연이나 지연을 내세워 이익을 몰아주고 흠결을 눈감아주는 음흉한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성공의 세속적 잣대인 돈과 권력이 아니라 수신(修身)과 진정한 의미의 명예를 가진 선후배이니 서로 얻고 잃을 것을 셈하지 않을 수 있어 더욱 기쁘다.

대학에서 국어교육을 강의하며 한문산문을 대중화하는 작업을 하는 김영 선배는 지금 내가 쓰는 글처럼 동양고전에 사색의 각주를 달아 놓았는데, 그 겸손한 작은 글씨들이 유독 재미있다. 신부님에게서 들은 ‘천당 단체권’에 대한 이야기는 《맹자》의 일절을 설명한 글에 포함되어 있다. 그 구절이란, “옛사람들은 뜻을 펼칠 수 있는 지위를 얻으면 혜택을 백성들에게 베풀고, 뜻을 얻지 못하면 수신을 하여 세상에 모범을 보이고, 곤궁하면 홀로라도 선한 행동을 하고, 출세하면 천하와 함께 선행을 행하였다”는 대목이다. 글귀를 옮기며 다시금 새겼을 지식인으로서의 자각과 고민이 선명하다.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세상이 점점 나아지리라는 희망보다는 점점 나빠지리라는 절망이 우세하다. 지위를 얻으면 혜택을 베풀기보다 독점하기에 급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수신하여 모범이 되기보다 불평불만의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가 된다. 곤궁해지면 홀로라도 선한 행동은커녕 혼자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발버둥질하고, 출세하면 함께 선행하기보다 사다리를 걷어차며 위세를 부리기 일쑤다. 세상을 원망하니 사람을 믿을 수 없고, 곁에 있는 사람조차 믿을 수 없으니 미워할 수밖에 없다. 부디 이것이 물정 모르는 칠실지우(漆室之憂)라면 좋으련만, 상황이 그보다 더 나쁜 듯하여 마음이 무겁다.

언젠가부터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말을 되뇌며 살았다. 나만 살아야겠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라도 살아야겠다며 환란 중에 살아날 궁리에 애바빴다. 이를 테면 신부님의 말씀처럼 개인 티켓을 구해보고자 동분서주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매진된 개인 티켓을 구할 방법은 웃돈을 주고 암표를 사거나 몰래 무임승차하는 방법 밖에 없으니, 그런 방법으로 과연 천당 문전에나 닿을 수 있을지.

“나만 아니면 돼!”가 통할 듯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이상기후와 전쟁의 위기와 묻지 마 살인과 테러의 위협과 날로 급증하는 자살률 속에서 단체 티켓이야말로 마지막 탈출의 기회일 수밖에 없을 터, 과연 그 종착역이 어딘가가 문제일 뿐이다. 천당이냐 지옥이냐, 공생이냐 공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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