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과 영국식 사이에 있는 한국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9.01. 10:28

수정일 2015.11.16.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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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3일 열병식에 참여할 중국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지난 8월 23일 열병식에 참여할 중국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12

중국에서 9월 3일에 열리는 전승절 열병식이 화제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근대 이후 열강에 뒤쳐졌던 중국이 이제 다시 깨어나 세계 강대국이 됐다는 선언을 할 기회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열병식이 중국의 강대함, 중국인의 위대함을 과시하는 역사적 장이 될 전망이다. 이번에 우린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장대한 행진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행진에 앞장서는 건 3군 의장대다. 중국의 250만 병사들 중에 1만 2000여 정예병이 선발돼 행진하는데, 그 선두에 정예 중의 정예인 3군 의장대가 서게 된다. 이들이 정예라는 건 전투력이 최고라는 뜻이 아니다. 신체조건이 매우 좋아서 중화제국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키가 크고 건장하다는 얘기인데 185~19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한 신체를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한다. 한 여름과 한 겨울에 3시간 이상 부동자세로 서있기, 40초 이상 눈깜빡이지 않기, 눈 가리고 보폭 맞춰서 행진하기 등을 하는데 가죽 부츠가 1년에 7 켤레 해질 정도다. 나중엔 700여 명이 100미터를 뛰어도 오차가 없는 수준까지 된다고 한다.

이번엔 중국 열병식 사상 최초로 여군 의장대가 참여해 더욱 화제가 됐다. 이들도 정예병사로 선발됐는데, 역시 외모 중심이다. 기존 여군 중에서 선발한 게 아니라 모델이나 여대생 중에서 외모가 출중한 사람들을 뽑았다고 한다. 일종의 군아이돌인 셈이다. 평균키 178㎝인 이들은 남자 군인과 똑같은 훈련을 소화했다. 훨씬 키가 큰 남자 군인들과 보폭을 맞추느라 더욱 고생했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사선삼공'(四線三功)‘의 원칙에 맞춰 훈련하는데, 사선이란 손발 등의 각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고 삼공이란 손발을 힘차게 내젓는 힘을 의미한다. 행렬의 오와 열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인공위성까지 동원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군인들이 마치 거대 기계군단처럼 일사불란하게 행진하는 열병식의 대오가 만들어진다. 이런 행진의 특징은 무릎을 굽히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발을 높이 차올려 힘찬 느낌을 준다는 데 있다. 군국주의를 발전시켜 독일을 통일한 프로이센 군대에서 시작돼 나찌, 소련, 중국, 북한 등에 퍼졌다. 이 나라들은 그런 행진을 통해 자국의 위대함을 과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행진이 주는 진정한 느낌은 위대함보다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이라는 위화감이고, 동시에 병사들의 건강도 염려하게 된다. 실제로 북한에선 행진 훈련을 하다 탈진해 쓰러진다든지, 장파열로 고생하는 병사들이 있다고 한다. 훈련과정에서 관절에 무리가 와 여생을 고생하며 살 수도 있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개인의 자율성, 창의성 등을 무시하고 집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행진문화가 퍼졌다.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고위층 인사들은 아랫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우리나라도 과거 독재시절엔 집단행사를 선호했었다. 현재 프로이센식 행진을 하는 국가들 중에 북한군의 발이 가장 높이 올라간다. 북한이 가장 전체주의적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겠다.

중국은 자국의 위대함을 외적인 것을 통해 과시하려는 흐름이 그전부터 있어왔다. 과거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 예쁜 아이를 내세워 립싱크 노래를 선보였다가 망신을 샀었다. 그런 외적 과시 욕망이 이번 열병식에서 극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행진할 군인을 외모 중심으로 뽑았으니, 동아시아 황인종 유전자가 보여줄 수 있는 신체스펙의 최대치가 전시될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외모 집단의 거대 행진으로 국력을 과시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

전체주의가 아닌 시민의 자유권이 발달하고 문화적으로도 성숙한 나라들은 이런 장대한 집단행사를 잘 못한다. 영국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자국의 힘을 과시하긴 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은 집단행사가 아닌 록밴드였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는 집단의 일사불란함보다는 시민의 자유와 창의를 더 중시한다. 한국은 지금 중국식과 영국식 사이 중간지대에 있다. 한쪽에선 인디문화가 발전하지만, 여전히 외적인 것 거대한 것으로 과시하고 집단총화를 강요하는 흐름도 엄존한다.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할 몫이다.

#중국 #하재근 #컬처톡 #중국 열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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