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란,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8.28. 15:10

수정일 2015.11.16. 05:42

조회 634

아이들ⓒ박준덕

“장차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지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에게 부모를 그리라고 하면 대개는 싫어해요. 그리고 싶지 않은 거죠. 그래도 억지로 그리라고 하면-실력이 있는 아이들이니까-굉장한 그림이 나와요.”
“10대 중반에서 후반까지의 아이들은, 저 자신을 돌이켜봐도 그렇지만, 인생에서 자아가 가장 활성화되는 시기예요. 부모의 자아라는 중력을 뿌리치고 탈출하기 위해 잔뜩 날카로워지는 거죠. 그래서 이번에는 너무 멀어지는 거예요.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너무 멀리까지 가버리는 거죠.”
“제 스승은 중고등학생에게 그런 부모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이 그림을 소중히 간직해라. 이것이 바로 지금, 너희들의 젊은 영혼이 인식하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그림을 약간의 부끄러움과 깊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라.”
- 미야베 미유키 소설 《낙원》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89

부모는 아이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창이다. 그것을 통해 언젠가 자신이 나아갈 바깥세상을 내다본다. 그런데 때로 그 창이 불투명하다거나 아이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 곳에 자리했을 때, 그것은 벽이 된다. 벽이 된 창은 바깥세상으로부터 아이를 차단하고 가둔다. 창 대신 벽으로 둘러싸인 집은, 둥지가 아니라 감옥이다.

창이든 벽이든,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에 있는 아이라면 그것을 뚫고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 소설의 주인공 히토시의 미술 선생 하나다의 말처럼, ‘부모의 자아라는 중력을 뿌리치고 탈출하기 위해 잔뜩 날카로워지’다 못해 ‘너무 멀리까지 가버리’기도 한다. 정직한, 그리고 건강한(여기서 ‘건강’이란 최소한 부모의 중력을 느끼고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는 적극적인 힘을 가진 상태를 말한다) 빠삐용들이 그리는 부모의 초상은 때로 과장된 형상과 괴이한 빛깔을 띤다.

‘자아가 가장 활성화’되던 그때에, 나는 부모를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람들로 취급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의미 없는 말씨름을 하느니 차라리 귀를 막고 입을 닫아버렸다. 그들은 속물인 기성세대였고 나는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세대였다. 그때 내가 그린 그들의 초상화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불신으로 얼룩지고 불평불만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 나 자신이 그들의 나이이자 그들의 위치가 되어 마음속에서 옛날의 초상화를 꺼내 펼쳐보니, 그야말로 ‘약간의 부끄러움과 깊은 애정’으로 얼굴이 붉어진다. 그때의 나는 너무 솔직하고도 너무 무지했다. 부모라는 ‘인간’의 약점에 지나치게 신랄했던 반면 그것이 ‘인간’ 본연의 허점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이제 다시 보는 부모는 그때 언뜻 보았던 약점에 더하여 이러저러한 장점들을 가진, 평범하고 무던하며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다.

가족이기에 무조건 사랑하며 감싸줘야 한다는 ‘가족판타지’는 기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창 혹은 벽 안에 갇힌 분노와 상처는 그들을 결점이나 약점이나 허점까지도 모두 가진 ‘인간’으로 이해하고 연민할 때 치유된다. 그렇게 용서하고 용서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김별아 #부모 #빛나는말 #가만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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