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허기에 의한 탐식에 가까운 '먹방'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8.21. 16:30

수정일 2015.11.16.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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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시장 ⓒ정혜윤

광장시장

- 동물은 삼키고, 인간은 먹고, 영리한 자만이 즐기며 먹는 법을 안다.
-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 식탁은 첫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유일한 자리다.
-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천체의 발견보다 인류의 행복에 더 큰 기여를 한다.
- 사람을 초대한다는 것은 그가 내 집 지붕 밑에 있는 내내 행복을 책임지는 일이다.

브리야 사바랭 《미식 예찬》 <잠언>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88

바야흐로 ‘먹(는)방(송)’의 시대다. 공중파와 종편과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일주일 내내 빠짐없이 요리와 요리 품평과 요리 경연 프로가 방영된다. 덩달아 요리사, 요즘 말로 ‘셰프’들은 토크쇼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불려 다니고, 주인공의 직업으로 드라마에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너무 자주 많이 먹으면 질리고 물리는 것처럼 머지않아 슬슬 지겨워질 때가 오겠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기세로 콘셉트만 조금씩 바꾼 요리 프로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한국과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이미 한바탕 휩쓸고 간 바람이란다. 요리와 음식 프로그램들은 버블이 꺼지고 깊은 경제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 일본인들의 공허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텔레비전 속의 요리와 미식(美食)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그럼에도 지지고 굽고 끓여서 후루룩 짭짭 맛있다 기막히다 최고다 떠들며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한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식욕이야말로 삶의 본능 그 자체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 식욕과 대립 구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머지 욕망 전부를 동원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자기 밥그릇을 지키거나 남의 밥그릇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었고, 브리야 사바랭의 잠언 중 가장 유명한 말대로 자기가 먹는 것이 바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미식의 정의는 그저 ‘맛있는 것을 그렇지 못한 것보다 선호하는 판단 행위’이지만, 채널만 돌리면 일주일 내내 그 행위를(그것도 타인의 행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맛없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을 넘어선다. 그것은 시대의 미뢰(味蕾)가 마비된 상태에서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하지 않은 감각이다. 실로 요리가 만들어지는 식당의 주방은 치열한 물과 불의 전쟁터이지만, 외식이든 가정식이든 식탁은 평화로운 곳이다. ‘먹방’은 출연자들이 아무리 호들갑을 떨며 맛있는 음식에 행복해 해도 그들에 대한 부러움이 질투나 시샘으로 변질되지 않는 매우 드문 프로그램이다.

그리하여 먹방의 범람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허기에 의한 탐식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육체적으로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우리의 정신은 여전히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고, 그것이 유해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과식하고 폭식한다. 아름다운 음식은 아름다운 삶의 꿈이다. 그것이 박탈당했거나 박탈당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 때, 우리는 마음을 채울 수 없어 몸을 채운다. 몸을 채울 수 없다면 눈요기라도 한다. 행복은 영영 구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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