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과 커뮤니티가 만났을 때

서울마을이야기

발행일 2015.08.19. 14:15

수정일 2015.08.19. 15:48

조회 1,431

동 청년들의 활력과 자생력을 책임집니다, 청년아지트 강동팟

동 청년들의 활력과 자생력을 책임집니다, 청년아지트 강동팟

강동구 청년들의 자생력 충전소 ‘청년아지트 강동팟’

강동역 인근, 큰길 안쪽으로 자리한 성내동 어떤 골목. 미장원, 세탁소, 이발소, 칠집… 일과가 끝난 늦은 저녁, 골목 양옆에 늘어선 가게들은 고요하다. 그 가운데 불이 밝혀진 한 곳. 젊은이들이 둘러앉아 함께 뭔가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 듯, 함께 웃음을 터뜨린다. 저녁에서 밤이 될 무렵, 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동네 어른들에게는 아직 알쏭달쏭한 이 곳. ‘청년아지트 강동팟’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마을카페로 싹튼 아이디어가 커뮤니티 공간이 되기까지

“처음엔 ‘저기 종교 공동체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대요. 뭘 하는 덴지 도통 모르겠는데, 낮엔 애들이 왔다 갔다 하다가 밤이 되면 이따금 우르르 몰려와서 뭔가 하고 가니까 낯설어들 하시는 거죠. 이제 얼굴 트고 지내는 분들도 꽤 계시지만요.” 강동팟 상근자 이진영 씨가 웃음을 터뜨린다. 공간의 문을 연 지 이제 8개월 남짓. 먼저 넙죽넙죽 인사하고 다닐 만큼 넉살이 좋지 못해서, 아직은 마을 사람들에게 살살 존재를 알려 가는 단계다.

강동팟 오픈의 주축이 된 문지선·우선택·이진영 씨는 <청춘의 대나무 숲>에서 만났다. 이진영 씨는 강동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이었고, 문지선·우선택 씨는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였다. 자치구 단위에서 활동하다 보면 젊은 활동가를 만나기 쉽지 않은 까닭에 ‘또래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조직한 인문학 공부 모임이 <청춘의 대나무 숲>이었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우리 마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으며 계속된 모임에서 젊은 활동가들은 많이 친해졌고, 지원이 끝나더라도 계속 만나고 싶었다.

“모임을 확장하고 싶다는 욕구와 공간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어요. 강동은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고 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많지 않은데다, 청년층 거주자가 많음에도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거든요. ‘강동에 마을카페나 인문학 카페 같은 것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2013년 하반기에는 숨어 있는 훌륭한 동네 카페들을 돌아다니면서 분위기나 인테리어, 특징적인 장점을 살폈어요. 작년에는 청년허브의 <청년 활동 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공간 조성 준비를 했고요. 지역에 계신 분들께 사업 구상을 설명하여 펀딩을 받고, 동네 청년들도 발굴했지요. 다른 자치구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친구들, 이를테면 동작 청춘플랫폼·강북 동네공터·마포 망원이글루·동대문 도꼬마리 운영자들을 만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어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서 공간을 열었는지,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그 과정에서 우리 공간에 대한 생각이 구체화되었어요. 누구든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일층에 있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큰 도로변 일층은 비쌀 테니, 아예 마을 안 깊숙이 들어와 있는 자리도 괜찮겠다는 것.”

작년 9월에 지금의 공간을 만났다. 마을 안쪽의, 작은 길 셋을 낀, 통유리가 있어 더욱 열린 느낌인 일층 공간. 10년 이상 동네 슈퍼였던 그 공간을 보고, 세 사람은 한눈에 반했다. 여기저기서 자금을 끌어 모아 계약하고, Urban Floating Office(약칭 UFO) 임소형 대표와 3개월 동안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여 작년 12월에 오픈했다.

“소형 선생님도 강동 주민이세요. 인문학 모임 때부터 함께 했고, 협동조합이나 셰어하우스 같은 사회적경제 영역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관심 분야를 반영하여 창업하고 사업을 막 시작하던 시기가 우리 공간 준비하던 때와 맞물려서 함께 일하게 됐죠.”

강동팟의 상근자 `팟지기`, 이진영(왼쪽)·최정희(오른쪽) 씨

강동팟의 상근자 `팟지기`, 이진영(왼쪽)·최정희(오른쪽) 씨

처음에는 거의, 백화점을 욱여넣고 싶은 마음이었다. 협업 가능한 사무 공간도 있었으면 좋겠고, 강연장도 필요하겠고, 주방은 빠뜨릴 수 없고… 하지만 공간은 겨우 48㎡, 열 평 남짓할 뿐이었다. 임소형 대표의 제안으로 ‘참여설계 워크숍’을 열어, 마을에 있는 공간 디자인 하는 분, 가게 운영 경험이 많은 분, 페인트칠 하시는 분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을 모아 놓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결론은 두 가지였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 꼭 필요한 것만 남기라는 것.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원래는 같이 입주하려던 팀이 있었는데, 셰어를 하게 되면 공간이 이도저도 되지 않겠구나 생각이 들어 포기했죠. 사람을 많이 모으고, 소통할 수 있게 하려면 주방은 꼭 있어야겠기에 ‘주방과 커뮤니티 공간의 결합’으로 콘셉트를 잡고 공사를 시작했어요.”

심플한 커뮤니티 공간.

심플한 커뮤니티 공간.

넓지는 않지만 기능에 신경 쓴 주방, [화요식탁]의 일일 셰프로서 최정희 씨가 초계탕을 준비 중이다.

넓지는 않지만 기능에 신경 쓴 주방, [화요식탁]의 일일 셰프로서 최정희 씨가 초계탕을 준비 중이다.

밥상의 따뜻함을 나누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현재 강동팟에서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으로는, 매주 화요일 저녁 일곱 시의 <화요식탁>, 2/4주차 일요일 낮의 <공유부엌: 공식(共食)의 가치>가 있다. <화요식탁>은 일일 셰프를 섭외하여, 셰프의 요리를 함께 먹으며 피로를 더는 모임이다. 직장인들에게 가장 힘든 요일이 수요일이라, 집에서 밥도 차려 먹기 귀찮을 수요일 저녁에 함께 식사하며 기운을 차리자는 뜻에서 원래는 <수요식탁>이었지만, 강동팟 상근자 ‘팟지기’들에게 수요일 저녁에 일정이 생겨서 화요일로 옮겼다. 5월까지는 <선데이 키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공유부엌: 공식의 가치>에서는, 음식 이야기를 하고 점심을 같이 지어 먹고 잠시 쉰 다음, 반찬 두세 가지를 만들어 나눠 갖고 간다.

“처음부터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밥상모임을 하고 싶었어요. <청춘의 대나무 숲>에서 밥을 함께 먹으며 정말 많이 친해진 경험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밥상에 둘러앉아 나누는 따뜻함이 강동팟의 상징 같은 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한 명이 오든 두 명이 오든,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밥을 하자고 생각했고 초반에는 정말 한두 사람만 오기도 했어요. 요즘은 공지하면 금세 마감이 되니 사람 모을 걱정은 없는데,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돼요.”

[화요식탁] 포스터, [화요식탁]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은 [화요식탁]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이웃집 치킨보이의 치맥(좌), [공식의 가치] 포스터(우)

[화요식탁] 포스터, [화요식탁]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은 [화요식탁]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이웃집 치킨보이의 치맥(좌), [공식의 가치] 포스터(우)

다른 것보다도 음식 관련 프로그램에 호응이 크다 보니, 팟지기들은 음식과 관련된 활동을 더 전개해 볼까 고민 중이다. 뜰장·벼룩시장처럼 강동구 내에서 열리는 장터, 도시농부들의 ‘파머스 마켓’ 등에서 나오라는 권유도 계속 들어온다.

다함께 반찬 만들기 삼매경

다함께 반찬 만들기 삼매경

“우리의 역량과 에너지를 모으면,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 가공식품, 예를 들면 잼 같은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도 싶고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다른 공간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브랜드를 만들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해요. 아마추어처럼 파는 게 아니라, 제대로 만들어 판매하면 강동팟의 수익 사업도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공식의 가치>가 여러 차례 진행되면서 고정 멤버들이 생겨나는데, 함께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확장해서 지역 봉사 활동도 하고 싶어요. 취약계층을 위하여 반찬 배달 봉사를 하는 분 말씀을 들어 보니, 우리 지역에 배달 받는 분들이 많이 계시대요. 지금은 우리끼리 반찬을 만들어 나눠 가지만, 앞으로는 지역에 계신 분들과도 나눌 수 있게 되면 좋겠죠.”

올해까지는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인건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당장 내년 1월부터는 어떻게 자생할 것인가가 문제다. 다른 지역에서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는 청년들이 처한 현실 또한 별반 다르지 않기에, 자기 지역에 박혀 있다가 고독사하지 않도록, <청년단체들의 고독사를 방지하는 심폐소생 프로젝트>를 시작한 게 며칠 전 일이다. 정보 공유에서만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아이디어가 식품 관련 사업이다.

[누구나학교] 포스터(좌), 월간 연구활동 주류연구회 포스터(우)

[누구나학교] 포스터(좌), 월간 연구활동 주류연구회 포스터(우), 테마를 정해 일정 기간 동안 운영하는 <누구나학교>. 인문학 공부 모임에서 시작했기에, 강동팟 멤버들은 지역에서 교육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마을공동체의 한 축으로서 단단히 뿌리 내리기 위해

강동팟이 위치한 성내동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강동구에서 가장 변화를 적게 겪은 동네다. 재개발 촉진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해제되며 대단위 아파트 단지 건설 등의 재개발은 없을 예정이지만, 단독주택을 허물어 다세대주택이나 원룸텔로 다시 짓는 재건축은 활발하다. 1인 가구 비중이 높고, 인접한 천호3동과 더불어 청년층 거주자가 많지만, 노인 1인 가구 또한 많다. 2013년부터 강풀만화거리를 조성하며 구 차원에서도 신경 쓰고 있지만 관광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완성된 것은 아니기에, 현 시점에서는 그 효과가 대단히 크지는 않다. 하지만 커뮤니티 센터와 예술 공간의 결합체인 가칭 ‘골목갤러리’가 내년쯤 완공될 예정이라 ‘강풀만화거리–성내전통시장-골목갤러리-주꾸미 골목’을 잇는 마을 관광 상품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팟지기들은 품고 있다.

“골목갤러리가 완공되면 강동팟과 유기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겠죠. 프로젝트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고. 저희가 이 공간에 있는 한은, 성내동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에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여기 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마을공동체로서의 토양은 성내동에 이미 형성되어 있어요.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활동한 주민이 많고, 성내전통시장 상인회나 직능단체까지 아우르는 ‘성안마을 공동체 협의회’에서는 작년 가을부터 일 년에 한 번씩 축제를 열거든요. 저희도 2년 내내 참여했어요. 다만, 청년 단체라면 다들 느끼는 점일 텐데, 마을공동체 안에서 ‘일꾼’처럼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어서 처음엔 살짝 부담스러웠어요. 지금은 거리 조절을 잘하자고 생각해요. 잘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하게 기여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은 받고.”

강동 청년들의 일상에 활력을 보태고, 흘러들어온 정보를 필요한 사람에게 매개하며 청년들의 다양한 시도를 지원하는 공간. 교육을 원하는 청년들에게 삶과 맞닿아 있는 교육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공간. 강동팟이 그리는 청사진이다.

성내동 곳곳에서 벽화로 만날 수 있는, 만화가 강풀의 작품

성내동 곳곳에서 벽화로 만날 수 있는, 만화가 강풀의 작품

강풀만화거리 지도

강풀만화거리 지도

강풀만화거리 지도 번호 순서대로 벽화를 보면서 성내동을 산책할 수 있다. 골목갤러리는 26번 벽화 옆으로 난 길을 서쪽으로 직진한 곳에 세워질 예정. 오래된 빈집을 매입하여 허물고, 삼 층짜리 건물을 짓고 있다.

강동팟 : 네이버 블로그 (gdpodazit.net) 페이스북 (www.facebook.com/gdpodazit)
글과 사진 : 김민주(자유기고가)
포스터 및 활동 사진 : 청년아지트 강동팟
강풀만화거리 지도 : 강동구청

출처 : 서울마을이야기 vol.30호(201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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