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

하재근(문화평론가) 하재근(문화평론가)

Visit309 Date2015.07.28 14:27

MBC [복면가왕]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MBC

MBC [복면가왕]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107

일요일 저녁 시간대를 지배했던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동시간대 2위로 주저앉았다. MBC <복면가왕>의 질주 때문이다. 무려 4연승을 기록한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복면을 벗는 순간엔 순간 시청률이 26.2%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6%만 넘어도 성공이라는 요즘 지상파 예능 분위기에선 이례적인 수치다. 한동안 일요일 저녁 예능에 약세를 보였던 MBC는 <복면가왕>으로 대역전의 기회를 잡았다.

KBS에선 미니시리즈 <복면검사>가 방영됐다. 검사가 복면 쓰고 악당들을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SBS에선 미니시리즈 <가면>이 방영되고 있다. 여주인공이 다른 인물로 가장해 새로운 삶을 산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자신을 숨기는 설정이 인기를 끄는 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복면은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설정이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쾌걸 조로> 등이 복면을 쓰고 활약했다. 한국에선 초창기 만화였던 <라이파이>부터 시작해 <일지매>, <타이거 마스크>, <각시탈> 등의 복면 영웅들이 있었다. <홍길동>과 <전우치>는 복면을 쓰지는 않지만 둔갑술로 자신을 감추기 때문에 유사 복면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정체를 숨기고 영웅적 행위를 해 사람들을 놀라게 것은 청소년기에 누구나 꿈꿀 법한 ‘로망’이다.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진면목이 사람들에게 인정과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소외감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복면을 쓰고 전혀 다른 존재가 돼서 진면목을 발휘한다는 설정이 통쾌하게 다가온다. 요즘엔 성인이 된 젊은이들도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열패감에 빠져있기 때문에 복면영웅의 호소력이 더 커졌다.

또, 복면을 쓰는 순간 기존 사회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도 매력이다. 공적 시스템이 악을 제대로 색출하거나 처벌하지 못한다는 불신, 불안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복면을 쓰고 기존 시스템의 제약을 뛰어넘어 시원하게 악당을 처치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가면을 쓰고 새 인생을 사는 것은 요즘 좌절한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한다. 계층상승의 사다리는 부러졌고, 이제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삶을 바꾸려면 아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가면을 써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재탄생하는 것. <가면>엔 그런 욕망이 담겨있다.

<복면가왕>의 인기엔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는 청년세대의 외침이 깔려있다. 우리 사회는 원래도 학벌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간판사회였는데, 21세기 들어 그런 특성이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하여 도래한 것이 스펙사회다. 스펙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

경쟁이 심해지면서 외모도 스펙의 하나가 됐다. 겉으로 봤을 때 호감을 주지 못하면 면접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서 요즘엔 스펙쌓기의 일환으로 성형수술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루키즘’이라고 한다. 한국 젊은이들은 스펙사회, 루키즘의 감옥에 갇혔다.

복면은 스펙과 외모를 모두 가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객은 가수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로지 가창력만으로 평가한다. 이것은 젊은이의 스펙과 외모를 완전히 가린 상태에서 오로지 능력만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다. <복면가왕>에서 4연승을 하며 파란을 일으킨 김연우는 지금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었다. 얼굴을 감추자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자신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한다. 외적인 요소 말고, 능력만으로만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복면, 가면의 인기엔 남들에게 익숙한 자신을 감춤으로서 그 안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싶은, 그리고 편견의 낙인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대중의 욕망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엔 심지어 할아버지 재산, 부모 직업까지 스펙이 되는 상황이다. 사람마다 출발선이 다르다. 이런 상황에선 모두가 복면 쓰고 똑같이 출발하자는 열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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