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 가기 전, 고독을 권한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7.24. 16:40

수정일 2015.11.16. 05:44

조회 884

나뭇잎ⓒ오진주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다 보면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고독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시켜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마침내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84

여름은 고독을 누리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열기와 습도의 상승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가까이 다가붙기를 꺼리게 되고, 깊은 골방은 서늘해지고,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는 휴가와 방학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홀로 머무를 여유가 생겨도 사람들은 기를 쓰고 그것을 피하려 한다. 혼자 있으면 외롭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고독은 예술가들에게나 멋있는 장식이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러운 허물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듯하다.

하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이 지적하듯 고독의 순기능은 모든 사람에게 통한다. 타인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진실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배워도(學) 홀로 익히는(習) 시간이 없으면 제대로 그 내용을 소화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과 대화를 하는 데 있어 혼잣말로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아첨하는 말로 알랑거리는 사람은 없다. 내가 내게 말을 거는 방식은 낯설지만 편안하고 고요할 것이다.

깊은 침묵 속에 빠진 채로 집중해서 나를 들여다보면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던 내가 보인다. 내 결점과 약점과 허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민할 수밖에 없는 애정의 지점이 보일 수밖에 없다. 고독이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만이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고, 나 자신을 이해해야만 남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고독 속에서 반드시 내가 존중받아야 할 이유를 찾았다면 남을 존중하며 대화할 수 있다. 말을 주고받는 일이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나 값없는 수다가 아니라 진정한 의사소통이려면 고독을 통해 단련된 분별심이 절실하다.

결코 고독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는 채 라캉의 표현대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이 넘치고 하고 싶은 일이 쏟아진다 해도 그것이 이식된 타인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망한가?! 스스로가 꼭두각시인줄 까맣게 모른 채로 우리는 가면을 치장하고 분장을 고치는데 너무 분주하고 고단하다. 한번 그 욕망의 노예가 되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을 불 듯 터질까 봐 걱정하면서도 가쁜 숨을 멈출 수 없다.

고독은 민낯으로 만나야 한다. 민낯이 아니라면 고독의 본령에 닿을 수 없다. 아름답지도 않고 때로 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독의 신봉자로서 감히 말하자면, 정녕 평화로울 것이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고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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