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를 반짝이게 하는 ‘시미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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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335 Date2015.07.14 10:32

유리 공예

유리로 그리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그림_시미지미(을지스타몰)

한없이 펼쳐진 드넓은 설원, 붉은 스웨터를 입은 단발머리 여인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연인을 향해 한껏 소리를 높여 안부를 묻는다. 수많은 광고와 패러디로 다시 태어난 이 장면은 영화 ‘러브레터’ 속 백미이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한 장면이다. 벌써 개봉 20주년을 넘긴 이 영화는 훗카이도 서부의 작은 도시 오타루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오타루 시는 설원만큼이나 유리 공예로 유명한 유리 공예의 고향이기도 하다.

유리 공예,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이름

영화 ‘러브레터’ 속에는 여주인공의 곁을 지키며 그녀의 새로운 연인 자리를 넘보는 이가 나온다. 유리 공예 장인인 그는 어깨에 기다란 쇠파이프를 두르고 섭씨 1,000도를 넘나드는 용광로 속에서 녹은 유리를 엿가락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며 작품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절로 감탄을 자아내는 그 모습이 유리 공예의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종류만큼이나 숙련되기도 쉽지 않은 유리공예. 그래서인지 국내에서는 다루는 학과도 전문가도 얼마 없다. 그중 을지로 지하도상가 한쪽에 자리 잡은 ‘시미지미’는 스테인드글라스 기법을 중심으로 다양한 유리 공예 작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전문 공방이다. 간단한 액세서리부터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조명, 물감 위에 겹겹이 유리를 얹어 원근감을 준 그림 작품까지 모두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들이다. 일반 손님들이 많이 구매하는 건 1, 2만 원대의 저렴한 액세서리 종류지만 유리 공예의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들어진 조명에 눈이 간다.

중세시대 성당이나 교회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던 스테인드글라스는 일종의 색유리 조각으로 퍼즐을 맞추는 작업이다. 과정은 이렇다. 먼저 도안을 만든 후 다이아몬드 칼로 모양에 맞춰서 정확히 유리를 잘라낸다. 꼭 맞아 들어간 조각의 경계선을 동테이프로 감아 납땜을 하면 유리 조각이 조금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 충격을 견디는 힘이 생긴다. 모양에 따라서 뒷면에 전구만 부착하는 경우도 있고 부채꼴이나 면면을 이어붙여 사각이나 팔각형태를 만들어 스탠드 대 위에 얹어 완성하기도 한다. 평면 조명의 경우 20만 원부터, 주물 스탠드는 50만 원부터 시작한다. 이경임 대표는 이런 자신의 작업을 ‘유리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비유한다. 딱딱하면서도 섬세한 유리를 물감처럼 자유자재로 다루기까지는 온몸에 화상 등의 흉터를 남기며 3년간 유리를 자르는 일만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름답고도 오묘한 유리공예의 세계

끊임없는 도전과 멈추지 않는 예술적 사유

학부 때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이 대표는 미술 교육을 공부하며 유릿가루를 금속에 얹어서 굽는 칠보를 배웠다. 그렇게 유리에 눈을 뜨고 보니 색이 칙칙한 칠보보다는 빛이 투과했을 때 반짝이는 유리 공예에 더 마음이 갔더랬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본격적으로 유리 공예에 응용할 수 있는 금속공예 박사 과정을 밟았다.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만큼 그녀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입체감을 자랑하는 그림 ‘드리밍 오브 빌리지 (Dreaming of Village)’ 시리즈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① 특별 주문 제작한 강아지 모양의 액자조명 ② 세상에서 하나뿐인 유리공예 펜던트가 인상적인 목걸이 ③ 입체감이 돋보이는 드리밍 오브 빌리지 시리즈 작품

① 특별 주문 제작한 강아지 모양의 액자조명 ② 세상에서 하나뿐인 유리공예 펜던트가 인상적인 목걸이 ③ 입체감이 돋보이는 드리밍 오브 빌리지 시리즈 작품

“드리밍 오브 빌리지는 어렸을 적 언니, 오빠, 동생이랑 신나게 쏘다녔던 서울의 달동네를 형상화한 그림이에요. 신기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던 집들 사이사이엔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어요. 재개발이란 이름 아래 이런 동네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이제는 정말 꿈에서나 볼 수 있다는 게 영 아쉬워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사이사이를 걸어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그녀는 전체적인 밑그림도 없이 아래부터 차근차근 그림을 그려나간다. 그러다 여기까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채색에 들어간다. 일반 물감을 사용하기도 하고 유릿가루를 녹여 물감처럼 사용하는 칠보 공예로 해나 달을 구워 올릴 때도 있다. 이렇게 작품이 모이면 1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열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경기도 양평 북한강변에서 열리는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나간다.

얼마 전 1주년을 맞은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은 판매자만 150팀 정도 되는 큰 시장으로 그림, 도자기, 유리, 패브릭 등 전문 작가들이 모이는 축제의 장이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품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 키아프(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에 나가기 위한 작품도 준비 중이다. 작가로서 꾸준한 작업 활동을 이어가는 동시에 그녀는 다른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본 전공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미학과 웹 디자인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지하도상가 공방 내에서 1대 1로 유리공예 수업을 진행한다. 하루에도 여러 건씩 수강 문의가 들어오는 유리 공예 수업의 경우 보통 원데이 클래스로 운영된다. 수강료는 재료비를 포함해 약 5만 원으로 캔들 홀더 같은 작은 소품을 만드는 과정이다. 유리 자르는 연습부터 시작해 하루 안에 완성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렇게 수업을 들어보고 정기적으로 수업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유리만 자르다 도저히 못 하겠다며 도망(?)가는 사람도 있다.

④ 각을 잡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팔각 등 스탠드 조명 ⑤ 크리스탈을 하나하나 손수 꿰매어 만든 목걸이 ⑥ 빛을 비추면 비 오는 날이 연상되는 발 형태의 조명

④ 각을 잡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팔각 등 스탠드 조명 ⑤ 크리스탈을 하나하나 손수 꿰매어 만든 목걸이 ⑥ 빛을 비추면 비 오는 날이 연상되는 발 형태의 조명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긴 호흡을 이어가다

20대 후반부터 6,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에게 골고루 사랑받는 시미지미. 젊은 손님들에겐 액세서리가, 주부층엔 조명이 인기가 좋다. 그러다 단골손님이 되면 그림을 구매하는 경우도 종종 있고 큐레이터나 다른 미술 작가도 심심찮게 찾아온다. 사실 지하도상가를 지나가다 유리의 화려한 빛에 이끌려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추고 시미지미에 들르는 사람마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이런 데 있을 가게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시미지미는 원래 각종 수공예품의 메카인 삼청동에 있던 유리공방이었다. 삼청동이 지금의 삼청동이 아니던 시절부터 7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왔지만, 매년 조금씩 오르던 자릿세는 더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자리를 찾던 중 건물주가 부르는 게 값이 되는 밖보다 시에서 관리하는 곳이라면 세를 올리더라도 적정선이 있을 거란 생각에 2015년 초 지하도상가로 내려왔다.

“작업하는 사람에게는 꾸준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지하도상가는 바깥 날씨에 상관없이 작업에 몰두할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장점이 있어요. 예전에 삼청동이 있을 때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가게 문을 닫고 나가는 날도 있었거든요.(웃음)”

지하철역과의 높은 접근성과 청소, 안전 문제에 대한 관리도 이곳에 터를 잡는 데에 한 몫을 했다. 게다가 작업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동대문이나 남대문, 명동 등 재료상과도 가까운 을지로는 이 대표에게 제격이었다. 안정적으로 지하도상가에 터를 잡은 만큼 앞으로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는 이경임 대표.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또 학생이자 교수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동안 그녀가 유일하게 손에서 놓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꾸준한 작업 활동이다. 각 역할 간에 균형은 엉망이지만 어떻게든 버티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점에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이런 정신을 담아 일본어인 공방 이름 안에도 곰곰이, 천천히, 차근차근 이란 뜻이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힘들 때도 많지만, 어떻게든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는 시간 자체가 그녀에게는 힘이 된다. 작품 하나하나에 갖은 정성이 깃든 것은 물론 평생 A/S까지 보장한다는 시미지미. 한 번 관계를 맺은 사람은 ‘끝까지 책임진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앞으로 을지로 지하도상가를 계속해서 밝혀줄 빛을 만난 기분이다.

인터뷰 : 이경임 시미지미 대표
글 : 이은수 / 포토그래퍼 : 강정호

주소 : 서울시 중구 을지로 131 을지스타몰 3구역 352호 (지하철 2, 5호선 을지로 4가역 10번 출구)
문의 : 02-2272-1224, simizimi.modoo.at

출처 : 매거진 G:HA[지하] 3호(서울시설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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