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 탓이야, 다 내가 잘못이야"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6.12. 17:30

수정일 2015.11.16. 05:47

조회 1,580

연못ⓒtkdgur100412

사람은 자책을 할 때 나름의 쾌락을 느끼는 법이다.
스스로를 비난할 때 우리는 우리 외에 다른 사람은 우리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느낀다.
우리의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은 사제가 아니라 고백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8

어떤 결과에 직면했을 때 자기 자신을 비관하고 책망하는 습성을 지닌 친구가 있었다.

“내 탓이야. 다 내가 잘못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가톨릭의 기도문을 온몸으로 실현이라도 하는 듯, 친구의 입에는 늘 자기에게 책임을 돌리는 자책과 원망의 말이 붙어 있었다. 그러면 정말 친구의 탓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은 그가 너무 비관하지 않도록 위로하기에 바빴다. 다들 그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마음이 여리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한 발 앞선 자책이 반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그가 진짜 잘못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그는 자책하고 주변에서는 위로하는 기묘한 풍경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사안이 나름 심각했던지라 몇몇 사람은 뒤돌아서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이미 그는 고백성사를 마치고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가 고백을 하는 대상도, 그의 죄를 사해주는 상대도 그 자신이었다는 것이었지만.

주로 손목이나 손바닥, 때로 목과 가슴과 배에서 발견되는 얕은 평행의 상처, 자해의 흔적을 법의학에서는 ‘주저흔(躊躇痕, hesitation mark)’이라 부른다. 말 그대로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남긴 상처다. 아무리 모진 마음을 먹은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앞서서는 단번에 치명상을 가하지 못하고 그처럼 흔들린 패배의 흔적을 남긴다. 그런가하면 ‘방어흔(防禦痕, defense mark)’은 공격을 당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막다가 생긴 상처인데, 가해자가 휘두르는 칼이나 흉기에 다칠 것을 엄연히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칼날을 잡으려는 것이다. 심지어 총을 쏘는 상대에게까지 손을 뻗어 대항하는 방어의 동작을 취한다고 한다. 결과는 계산하지 못한다. 두 가지 모두가 삶에 대한 본능에서 비롯된 일이기 때문이다. 불의의 공격을 당해 위험에 빠진 사람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려는 사람에게조차, 살고자 하는 의지와 본능은 마음을 거슬러 몸으로 표현된다.

어쩌면 자책은 주저흔인 동시에 방어흔이라 할 만하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잘못을 알기만 해도 다행이다 싶지만, 그것이 통렬한 반성과 성찰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진정한 반성과 성찰이야말로 주저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존재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의 질책에 방어하기 위해 자신의 살갗 위에 실금을 그어 맺힌 핏방울을 보여주는 일은, 교활하다.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며 피학적 쾌감을 느낀다는 면에서 더더욱.

#김별아 #빛나는말 #가만한생각 #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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