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고 행복한 해방촌 골목길 카페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5.06.05. 15:51

수정일 2015.11.18. 23:22

조회 3,053

함께서울 착한경제(25) 요즘 핫한 해방촌에 위치한 협동조합형 카페, 해방촌 빈가게 

서울의 골목골목을 구경하다 보면, 나만의 비밀 공간으로 숨겨두고픈 카페를 만나게 된다. 남산 아래 첫 동네 해방촌에도 그런 카페가 있다. 빛바랜 사진첩 속 풍경 같은 골목에 자리한 ‘해방촌 빈가게’가 바로 그곳이다. 호젓하게 머물고픈 나만의 보물 같은 카페. 청년들이 직접 만든 곳으로 아직 비어있으되 풍성하게 채워가는 공간이다.

건강까지 챙겨주는 단골 카페

해방촌 빈가게

구불구불 해방촌 오거리로 이어진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자니,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느낌이다. 10년, 20년, 30년 전, 빛바랜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과 차들로 뒤엉킨 오거리의 번잡함을 피해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낮은 상가와 다세대 주택들 사이 ‘해방촌 빈가게’가 보인다.

빈가게 입구에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협 물품, 직접 만든 수제품을 판매한다

빈가게 입구에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협 물품, 직접 만든 수제품을 판매한다

한쪽 벽면을 채운 책들과 나무 선반, 나무 테이블…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다. 카페 한켠, 복층 구조 공간은 이곳 ‘해방촌 빈가게’의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다락방 같은 2층과 아늑한 아래 공간은 늘 누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 근처 살아요. 남산 산책길에 자주 들르는데, 조용하고 책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복층 아래 공간을 즐겨 찾는 ‘해방촌 빈가게’ 단골 김은하 씨는 아메리카노 맛이 좋다며 추천해준다.

빈가게는 책을 읽거나 개인적인 일을 보기에도 좋은 카페다

빈가게는 책을 읽거나 개인적인 일을 보기에도 좋은 카페다

‘해방촌 빈가게’의 또 다른 매력은 건강한 먹거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각종 커피와 차, 짜이, 에이드 등 다양한 음료는 물론 채식라면, 카레라이스, 돼지숙주볶음 등 좋은 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카페에서 일하는 베로 씨는 아침마다 채식빵을 만든다

카페에서 일하는 베로 씨는 아침마다 채식빵을 만든다

“처음부터 ‘좋은 것을 먹자, 우리가 먹을 것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기본적으로 유기농 재료에, 채식이라든가 그리고 가능하면 수제로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럽 같은 재료도 비정제 유기농 설탕을 직접 끓여 만들어 쓰고, 에이드도 무농약 오미자청이나 유자청, 수제 레몬청을 사용하는데 주문 즉시 직접 스파클링해 만듭니다.”

해방촌 빈가게에서 제공하는 빵과 커피

해방촌 빈가게에서 제공하는 빵과 커피

‘해방촌 빈가게’에서 카페 마스터로 일하고 있는 베로 씨는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직접 빵을 굽는다. 전남 구례산 통밀가루에 일체의 합성첨가물도 넣지 않고, 버터, 우유, 달걀조차 사용하지 않은 건강한 채식빵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좋아 즐겨 찾게 되는데, 인기메뉴인 짜이와 함께 곁들여 먹기도 좋다.

해방촌 주민, 청년, 예술가와 함께하는 공유 카페

‘해방촌 빈가게’에서는 공연, 전시, 워크숍, 상담, 변두리 상영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각종 공부 모임도 진행된다.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오후에는 사주팔자와 타로 카드로 인생의 고민을 풀어주는 ‘강가상담소’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후에는 공동체 은행 ‘빈고’ 해방촌 지점이 빈가게 한 쪽에 둥지를 튼다. 여느 상담소보다 진솔한 얘기를, 실속 있는 재무 상담을 받을 수 있어 꾸준히 찾는 이들이 있다. 또한, 해방촌 잡지나 해방촌 소개 책자, 자료들도 비치되어 있어 해방촌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축가, 예술가, 연구가들도 종종 찾는다.

해방촌 빈가게에 대한 설명을 듣는 마포에서 온 다정한 사무소 마을 탐방팀들

해방촌 빈가게에 대한 설명을 듣는 마포에서 온 다정한 사무소 마을 탐방팀들

빈가게 입구에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유기농 식품과 친환경 생활용품 등도 대신 판매하고 있다. 또한 해방촌 청년 예술가나 지역 주민이 만든 수제 물품도 대신 판매한다. 예술가들의 그림 들어간 빈노트, 헤어핀 같은 액세서리, 수제 인형과 파우치, 수제 화장품, 인디 음반 등 보기보다 다양한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이렇듯 ‘해방촌 빈가게’는 비록 너른 공간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카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도 주민들과 함께 보는 공유도서관이니, 카페 안에서 다양한 공유의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해방촌 빈가게’는 원하는 이들에게 대관하기도 한다. 생일 파티, 스승의 날 행사 등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에도 대관해주기도 하지만, 인디 예술가나 기획자들을 위해 공연 장소로 대관을 해주기도 한다. 때론 지역 예술가를 위해 공연 무대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한울의 `수줍은 프로포즈` 공연 모습

한돌의 `수줍은 프로포즈` 공연 모습

“작년부터 해방촌 빈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빈가게 공간을 빌려주셔서 밤에 연습을 해왔어요. 그러다 매주 한 번 공연해보지 않겠냐 해서, 오늘부터 3개월 정도 매주 금요일 9시부터 30분간 공연을 하기도 했죠.”

지난 29일 빈가게에서 첫 공연을 마친 한돌 씨는 자신의 공연명처럼 ‘수줍은 프로포즈’가 된 것 같다며 쑥스러운듯 미소를 지어 보인다.

카페 앞에는 동네 아이들이 오며가며 들르기도 한다

카페 앞에는 동네 아이들이 오며가며 들르기도 한다

이곳 빈가게에서는 매주 토요일 지역 아이들을 위한 마을학교도 진행해왔다. “동네에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다 보니, 아이들이 수시로 물을 마시러 오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애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청년들이다 보니,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그냥 같이 먹고 그렇게 지냈는데, 아이들이 부모님을 기다리며 밤 늦게까지 골목을 배회하며 놀더라고요. 그래서 이 아이들과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저희 중에 연극 놀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같이 엮어서 수업을 시작했죠. 근처 성당 어머님들이 책 읽기 지도도 해주시고, 그런 게 계기가 되어서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하게 되었던 거죠.”

이렇듯 해방촌 빈가게는 그간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실험을 하기도 하고, 지역에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카페 공간을 공유하기도 한다. 누구나 작업할 수 있는 빈 노트북이 있고, 함께 읽는 책장도 있다. 때론 택배를 맡아주기도 하며, 공동구매 쌀을 보관하며 좋은 먹거리를 나누는 일도 한다. 해방촌 지역 화폐 환전소 역할도 하고, 마을장이 서는 날엔 거점 공간이 되어준다. 때론 지역 아이들에게 쉬어갈 수 있는 너른 품이 되어주기도 한다.

청년다운 꿈과 희망이 있는 공간

“우리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위해 일단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빈가게를 하기 전부터 빈집 친구들과 두부나 맥주 같은 걸 만들기 보기도 했는데, 팔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좋은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공연이라든가, 세미나라든가 그런 것들도 하고 싶었어요. 우리들의 아지트로 만들어서 꾸려가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소박한 매력이 있는 카페 ‘해방촌 빈가게’는 협동조합형 카페다. 이래저래 품을 거든 조합원만 대략 90여 명, 그렇다고 주인이라고 갑질하는 이 하나 없다. 그저 빈집 식구들의 ‘일 놀이터’일 뿐이라는데, 선뜻 이해가 되진 않는다. 십시일반 모은 자금으로 집을 얻어, 손님들의 집인 ‘빈집’을 만들고,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도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2008년 시작한 빈집은 현재 서울에만 3~4곳, 멀리 부산이나 팔당 등에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방촌 빈가게’는 2010년 ‘빈가게’라는 이름으로 언덕 아래 해방촌 초입에서 시작해, 2012년 현재의 위치인 해방촌 오거리에 자리 잡으며 이름도 ‘해방촌 빈가게’라 바꾸었다고 한다. 보다 적극적인 마을살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집이란, 가게란, 재산가치나 소유물이 아닌 함께 사는 곳, 즐기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청년들이라니, 진정 청년다운 도전이 아닐까 생각된다.

■ 해방촌 빈가게

 ○ 운영시간 : 아침 10시 반~ 오후 11시 (금요일과 토요일은 12시까지)

 ○ 휴무 : 매달 첫째 주 월요일

 ○ 주소 : 용산구 소월로20길 27 (1층)

 ○ 연락처 : 02-790-1968​

  ※ 채식빵은 하루 전까지 미리 주문하는 것이 좋으며, 강가상담소 등도 미리 예약해야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ingage)을 참고하자.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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