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처럼 살풍경하기에 사랑은 빛난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6.05. 13:30

수정일 2015.11.16. 05:47

조회 347

하늘ⓒ뉴시스

사랑하는 사람은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연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어머니는 바다 건너 산 너머에서 자기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사랑은 존재들을 결합시킨다. 영원히 하나가 된다.
선행은 존재와 존재를 묶어 주고 악행은 존재와 존재를 이간시킨다.
분리란 악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분리란 거짓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름답고 거대하고 상호적인 얽힘뿐이기 때문이다.
--미셸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7

이토록 신랄하고 냉소적인, 어쩐지 통쾌하면서도 자꾸 슬퍼지는 소설을 읽어나가다가(왜, 어떻게 그러한지는 부디 직접 읽어보시길-대부분의 ‘좋은 소설’들이 그러하듯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후반부에 다다라 문득 숨고르기를 하듯 멈추어 섰다. 이 지독한 이야기는 마침내, 기어이 사랑으로 귀결된다. 소설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남아 살아간다. 꼭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같이. 소설이 세상을 닮고 세상이 소설을 닮는다.

처절한 삶의 풍경 속에서도, 아니 그처럼 살풍경하기에 더욱, 사랑은 빛난다. 사랑은 삶의 오감을 뒤흔들고 육감을 일깨워 아무리 깊은 바다와 높은 산도 뛰어넘어 연인의 목소리를, “엄마!”라고 부르는 자식의 소리를 또렷하게 듣게 만든다. 그들은 무엇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는 사랑으로 이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둠이 짙을수록 별빛이 영롱하듯, 사랑이라는 결합의 선행은 분리의 악행을 통해 돌올해지고 확연해진다. 착한 마음과 행동은 나를 넘어 타인으로, 세상으로 번진다. 우연한 시간과 장소에서 기대 없이 받은 선의는 기쁨과 행복감으로 우리의 마음을 녹녹하게 한다. 얼결에 떠안아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다면 당사자가 아닌 누군가에게라도 돌려주고픈 선한 충동에 휩싸인다. 그래서 결국 내가 베푼 선의의 대가는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돌려받지 못할지언정 돌고 돌아 결국 내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요사이 우리의 삶은 도리어 정 반대로 불쑥불쑥 솟구치는 까닭 없는 적의로 위태롭다. 내가 직접적인 해코지를 당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무작정 싫어지고 미워진다면 그것은 악행에 이간질당한 증거다. 일전에 내가 동네에서 겪은 사소한 일, 작은 갈등이 큰 미움으로 번진 예만 해도 그렇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그것을 제복을 입고 폭력을 행사하며 해결하려는 시도를 본 후로는 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에 갑자기 정이 떨어지고 이웃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달라졌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만 보아도 벌렁거리듯 긴장하고 의심하고 마침내 저주하게 되는 것이다.

악행이 존재들을 이간질하면 우리는 결국 자신을 숨기고 서로를 속이게 된다. 어쩌면 악다구니질과 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그것이다. 철저히 분리된 채 각각이 고립되어 바위를 꿈꾸지 못하는 모래알처럼 영영 거대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어지는 것.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