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정직한 커피를 만들어요~

시민기자 이현정

발행일 2015.06.02. 13:17

수정일 2015.11.18. 23:23

조회 1,682

함께서울 착한경제 (24) 느리지만 정직한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 ‘좋은날 더치커피’

더치커피 제조 모습

더치커피 제조 모습

‘커피의 와인’, ‘천사의 눈물’이라 불리는 더치커피가 인기다. 산뜻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어, 커피 애호가들에겐 궁극의 커피로 사랑받고 있다. 커피 특유의 쓴맛과 신맛을 꺼리던 이들도 쉽게 빠져드는 맛이다. 하지만 몇 해 전, 기준치 이상의 세균이 검출된 위생 불량 더치 커피 뉴스를 떠올리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좋은 원료로 깨끗하게 만든 ‘좋은날 더치커피’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을 찾아가, 발달장애 청년들이 만든 느리지만 정직한 더치커피에 대해 알아보았다.

장애청년들의 행복한 일터,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

피아노가 파우치커피를 상자에 담고 있다

피아노가 파우치커피를 상자에 담고 있다

​은은한 커피향이 감도는 작업장은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특히 더치커피 기구 주변은 온도와 습도까지 맞춰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입구 쪽 테이블에선 ‘피아노(성미산 마을에선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가 파우치커피를 상자에 담고 있다. 그녀의 더딘 손길은 어수룩한 듯 보이지만, 찬찬히 지켜보면 온 정성과 힘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디스코`가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에 붓고 있다

`디스코`가 커피 원두를 그라인더에 붓고 있다

​한참 뜸을 들이던 ‘디스코’가 어느새 작업복과 위생모를 갖춰 입고 작업장 안으로 들어선다. 이제야 일할 마음의 준비가 끝났나 보다. 이내 원두를 찾아들고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커피 그라인더에 붓는다. 또 가만 생각하다 그라인더를 작동시킨다.

“자폐 1급이라, 다들 이 친구가 일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죠. 장애인 작업장에서도 반가워하지 않아요. 다소 서툴러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할 수 있는데 말이죠.”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은 발달장애 청년들과 더치커피를 생산한다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은 발달장애 청년들과 더치커피를 생산한다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 최경화 이사는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더치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은 성미산 마을에서 성장한 장애청년들이 익숙한 마을 안에서 자립하기를 꿈꾸며 만든 마을기업이다. 부모와 교사,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만든 협동조합이다. 물론 지금의 협동조합 모양새를 갖추게 된 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필요했다. ​성미산학교 재학시절, 쿠키를 만들고 학교 안 카페를 운영했던 3년간의 경험도 소중한 공부가 되었다.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미리 학교 안에서 공부하는 거죠. 이 친구가 잘하는 게 뭘까 고민하다, 쿠키 굽는 일을 찾아냈고, 좋아하는 쿠키를 구워 카페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짜증을 부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기가 주체도 아니고, 편하지 않고, 맨날 똑같은 쿠키만 반복해서 계속 굽게 하니 행복하지 않았던 거죠. 그제서야 ‘아, 우리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른 기업들이 자선처럼 내주는 일자리 형태밖에 되지 않겠구나. 아이들이 주체가 되는 행복한 일자리는 아니겠구나.’ 깨닫게 된 겁니다.”

“이이이이잉..” 커피 그라인더 소리를 따라 ‘피아노’가 목소리 흉내를 낸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들은 또다시 웃음보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좋은날 더치커피 작업장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쉽게 알아들을 수 없지만, 비록 많이 더디고 서툴러 답답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기다려주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행복한 일터였다. 문득 비장애인인 우리들의 작업장에선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느림의 미덕을 배우다, 좋은날 더치커피

동그란 유리병 속 맑고 투명한 물방울이 천천히 드리퍼 위로 떨어진다. 미세한 커피 입자 사이를 지나며 은은한 커피 향과 색을 담아 방울방울 모여든다. 실험 도구를 연상시키는 더치커피 기구에서 커피를 추출하는 데는 대략 10시간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적어도 3~4일 이상 숙성시켜야 더욱 깊은 맛을 낸다. 이와 같은 더치커피가 장애청소년들의 미래를 고민하던 이들의 눈에 들어온 건, 운명보다 깊은 끌림이었으리라.

최경화 이사는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더치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최경화 이사는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더치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청년들은 느리지만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천천히 기다려주면 최고의 맛을 내는 더치커피는 우리 청년들과 꼭 닮았습니다."

​덕분에 장애청년들은 천천히 자신의 보폭에 맞춰 일할 수 있었다. 커피가 내려오는 동안 서두르지 않고, 병도 씻고 상자도 접어놓는 등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이처럼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깊은 고민 끝에 이들 청년에게 꼭 맞는 사업 아이템을 찾은 것이다.

"일단 사업을 시작하긴 했는데, 판로를 개척하고 홍보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어디를 찾아갈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그런데 다행히 마을에 울림두레 생협이 있어 힘이 되었죠. 많은 양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지지기반이 되어주었어요.”

`좋은날 더치커피`는 마을장터나 마르쉐 등 마켓에도 참가한다

`좋은날 더치커피`는 마을장터나 마르쉐 등 마켓에도 참가한다

​2013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매달 백만 원 가량의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한다. 그간 마을금고나 대동계 등 마을 공동체 주민들의 종자돈 대출을 통해 재정난을 해결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두레생활협동조합연합 전체로 공급을 확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부모·조합원의 간절한 소망이 모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행복한 일터를 만들고, 가까이서 지켜봐온 마을을 움직이고,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생활협동조합 소비자들을 움직이며, 꿈을 향해 성큼 다가서게 된 것이다.

​이제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 청년들은 자신이 번 돈으로 동네 가게에서 군것질도 하고, 혼자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하기도 한다. 처음 몇 달간은 바로바로 쓰기 바쁘더니, 이젠 절약하기 위해 만 원짜리를 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때론 좀 더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궁리를 하기도 한다.

“어마어마한 발전이죠. 그리고 재미있잖아요. 마을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그걸 도와주는 분이 자꾸 생겨나고.. 그래서 저희같이 어려움이 있는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마을마다 이런 일터를 만드셨음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자꾸 생겨나서 우리 아들처럼 행복하게 동네에서 지내는 친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가 더 잘해야 되겠구나 생각하고,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서울의 마을, 마을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행복한 일터를 꿈꾼다면, ‘좋은날 더치커피’ 한 병 지인들에게 선물해보자.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의 지난 이야기와 꿈도 함께 나눠보면 좋겠다. (구입 문의 : 070-4154-3757, gooddaydutch.modoo.at )

`좋은날 더치커피` 판매 제품

`좋은날 더치커피` 판매 제품

좋은날 더치커피를 더욱 맛있게 즐기려면?

좋은날 더치커피는 국내에서 로스팅한 최고급 유기농 공정무역 원두를 사용하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철저한 살균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병과 파우치 제품이 있어 취향에 맞게 이용하면 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쉐이커에 흔들어 거품을 충분히 낸 후 마시면 맛이 더 좋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쉐이커에 흔들어 거품을 충분히 낸 후 마시면 맛이 더 좋다

- 더치 아메리카노 : 좋은날 더치커피 40mL에 물 160mL를 넣으면 되는데, 차갑게 마시려면 뜨거운 물 대신 얼음과 냉수를 넣어 마시면 된다. 더욱 맛있게 즐기고 싶다면, 쉐이커에 더치커피와 얼음과 냉수를 넣고 흔들어 거품을 충분히 내 마시면 한결 맛이 좋아진다.

- 더치 아이스 라떼 : 컵에 얼음과 우유 160mL 넣은 후, 좋은날 더치커피 40mL를 위에서부터 서서히 부어 그라데이션이 생기게 부어준다. 부드럽게 즐기고 싶다면 거품기를 이용해 충분히 거품을 내 마시는 것이 좋다.

이현정 시민기자이현정 시민기자는 '협동조합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라는 기사를 묶어 <지금 여기 협동조합>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협동조합이 서민들의 작은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는 끊임없이 협동조합을 찾아다니며 기사를 써왔다. 올해부터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협동조합부터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에 이르기까지 공익성을 가진 단체들의 사회적 경제 활동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배운 유용한 생활정보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녀가 정리한 알짜 정보를 통해 '이익'보다는 '사람'이 우선이 되는 대안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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