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하리!"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5.29. 16:14

수정일 2015.11.16. 05:47

조회 1,367

노을ⓒ강윤희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연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연약한 사람은 세상 단 한 곳에 자신의 사랑을 고정시켰고, 강한 사람은 그의 사랑을 모든 곳에 펼쳤으며, 완전한 사람은 그의 사랑 자체를 없애버렸다.
--성 빅토르의 휴고(Hugo of St, Victor)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6

어느덧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고향을 떠나 산 시간이 더 길어졌다. 돌이켜보면 어설프나마 문리가 트이고부터는 줄곧 고향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질했던 것 같다. 산맥에 가로막힌 그 작고 좁은 해변 도시가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투박한 말투를 쓰는 고향 사람들은 몇 다리만 거치면 친척이거나, 친구의 친척이거나, 친척과 친구의 지인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주는 안정감만큼이나 압박감과 답답함이 컸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온 후, 소원대로 익명성이 주는 해방감을 마음껏 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외로워질 때면 어김없이 계절을 따라 황홀하게 변하던 고향 바다의 물빛과 산색을 떠올렸다. 언젠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때 나는 세상 단 한 곳의 기억과 그 기억의 사랑에 붙매인 연약한 영혼이었던가 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타향보다 고향이 낯설어졌다. 어린 내가 놀던 골목, 옛집, 친구들까지도 사라진지 오래다. 구(舊)도심으로 불리는 옛 번화가는 빛을 잃은 채 초라하기 그지없고, 상전벽해나 다름없이 논밭을 밀어 세운 신시가지엔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와 프렌차이즈 상점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이라는 곳에 다녀올 때마다 내 추억 속에 빛나던 고향이 하나씩 죽어간다.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다.

고대판 <다이 하드>라도 되는 양, 오디세우스는 온갖 난관과 죽을 고비를 겪으며 무려 20년 동안 오로지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떠도는 동안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대해 지독한 향수병을 앓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묘파한대로 “오디세우스가 고향이 보고 싶어 괴로워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것처럼, “향수가 강하면 강할수록 추억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머무르는 곳마다 제2의 고향, 제3의 고향을 느낄 정도로 변죽이 좋지도 못하다. 그럴 만큼 사랑이 넘치는 강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게다. 이대로 아무 곳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랑의 기억마저 깡그리 지워버린 이방인이 되어버린 상태를 성 빅토르는 ‘완전’하다고 부른다. 그것은 어쩌면 12세기 독일 작센의 수도사였던 그의 처지에서 비롯된 깨달음인지도 모른다. 수도자들이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이유는,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무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인간적인 정, 미련과 집착 때문이라고 한다. 크게는 사람에서부터 작게는 수도원이나 절 마당의 나무 한 그루와 돌멩이에게까지... 사사로운 마음을 주지 않아야만 비로소 세상을 사랑할 수 있으리니.

토마스 울프의 소설 제목이 새삼스레 가슴을 친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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