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랑] 통의동 ‘보안여관’ 이야기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5.05.26. 14:00

수정일 2015.05.26. 17:08

조회 2,640

보안여관

사람을 만날 때 흉금을 터놓고 정담을 나누기 가장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나로선 남녀 불문하고 여관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난 가끔 여관으로 간다. 그 여관들 가운데서도 경복궁 영추문 맞은편에 있는 통의동의 '보안여관(保安旅館)'이 가장 탁월하다. 그러나 초면에 서로가 만나기 전 약속 장소를 정할 때까지는 꼭 아래와 같은 대화가 오간다. 어느 날, 이름만 알고 얼굴은 모르는 고교 영어 교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였다. 40대 후반의 여자인 정 선생님과 먼저 전화로 간단히 인사한 다음 내가 물었다.

"그럼 내일 저녁 7시에 어디서 볼까요?"
"장소를 추천하시면 제가 찾아갈게요."
"그럼 제가 자주 애용하는 곳인데, 경복궁 영추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에서 만나지요."
"예? 여…관…요?"
"예, 아주 운치 있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여관인데, 이름처럼 보안도 확실해 제가 자주 애용하거든요."
"어쨌든 처음 만나는데… 어떻게 여관에서… 참 엉뚱하시네요."
"거기가 여관이긴 하지만 그래도 보통 여관 같지 않고 아주 특별해요. 지루하거나 피곤하지 않게 방과 복도 벽마다 독특한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쉬면서 고상하고 우아하게 감상도 하고요. 청담동이나 인사동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젊은 예술가들의 아주 실험적이고 독특한 예술 세계지요. 그리고 더욱 좋은 건 서로 얘기하며 놀다가 배가 출출해 마당으로 나오면 막걸리에서 와인까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장터도 있고요. 그런 여관 봤어요?"
"아뇨. 그래도 여관은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다음 날 저녁 정 선생님은 예상대로 나타났다. 의심스러웠는지먼저 여관을 한 바퀴 둘러본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처음에는 여관이라는 말에 황당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다가도 막상 와서 보고 듣고 느끼면 180도 달라진다. 하긴 나도 인사동 골목만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서촌의 이 여관을 '발견'하고부터는 아예 단골이 되어버렸다. 하얀 아크릴 간판에진한 푸른 글씨인 통의동 2-1번지 '보안여관'은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지은 적산 가옥이라고 했다.한때는 거의 주말마다 서촌 일대와 인왕산 주위를 산책하다 보니 통의동이란 마을이 아주 옛날부터 예술가들의 명당 터라는 사실도 주워들었다. 멀리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도 벗들과 노닐었고, '세한도' 그림으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도 태어나고 성장해 무명화가 허련을 가르쳤고, 요절한 천재 시인인 이상이 '오감도'에서 묘사한그 '막다른 골목'도 바로 이 통의동 골목이라고 했다. 또 1930년대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던 '시인부락'이라는 문학 동인지도 이 보안여관에서 태동했다. 당시 서정주 시인이 이 여관에 장기 하숙을 하면서김동리 소설가, 오장환, 김달진 시인 등과 함께 탄생시킨 것이다. 이외에 청년 시절의 화가 이중섭도 일본 애인 마사코와 부지런히 애용한여관이라고 했다.

여관 문에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서도 안 됩니다. 종로경찰서 종로 청소년선도위원회'라는 낡은 경고문이 있지만, 요즘엔 미성년자는 물론 어린아이들까지도 엄마 손잡고 수시로 드나든다. 여관 안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하고, 마당과 골목길에서는 유기농 먹을거리 장터와 각양각색의 수제 공예품들을 진열해 팔고 있었다.낡은 여관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둘이 누우면 좁고 포개 누우면 담배와 물 주전자라도 놓을 만한 크기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낮은 천장과 신문지로 바른 벽지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고, 흙으로 쌓은 벽은 곳곳이 파여 있어 전후의 폐허를 연상시킨다. 서까래가 노출된 천장 아래 좁은 복도 양쪽의 작은 방마다 실험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안여관

그런데 여기에 올 때마다 궁금한 게 하나 있었다. 그것은 청와대 앞이자 경복궁 담벼락 맞은편의 이 황금거위 같은 땅에 화려하고 세련된 빌딩 대신, 옛날 그대로의 원형을 유지하고 보존하며 문화예술이라는 새로운 투숙객을 받아 전시공연센터로 업그레이드하는 건물주의 정체와 마인드였다. 알아보니 프랑스 유학을 떠난 최성우(현재 메타로그아트서비스 대표, 일맥문화재단 이사장)라는 한 미대생이 미술과 문화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2004년 폐업하며 재개발로 해체될 위기에 있었던 이 여관을 인수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키워왔다는 것이다.

심지가 깊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서울은 도시의 기억을 지우려고 밀어붙이고, 보안여관은 기억을 지우지 않으려고 버틴다. 예술이 무엇인지,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 또 예술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지, 보안여관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물론 정답은 없고 또 정답이 목적도 아니다. 난 보안여관 단골 투숙객으로서 서울의 심장부에 이런 명소가 숨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그래서 난 오늘도 통의동 보안여관으로 간다.

출처 : 서울사랑 (글_소설가 이산하)

#서울사랑 #서촌 #보안여관 #통의동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