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10대들의 '욕설문화'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5.12. 14:08

수정일 2015.11.17. 18:21

조회 2,502

입ⓒ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95

최근 SBS 예능프로그램 <동상이몽>에서 욕쟁이 여학생이 등장해 청소년 욕설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프로그램은 이 여학생의 일상생활 모습을 보여줬는데 친구, 동생과의 대화는 물론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도 욕설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처음에 10대의 욕설을 한때의 또래문화 정도로 관대하게 봐줄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던 패널도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는 욕설을 한 여학생 본인도 자신의 언행을 TV 영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고는 충격 받은 눈치였다.

그 여학생은 중학교 3학년 때 눈이 작다며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해보이기 위해 욕설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했던 욕설이 입에 붙어 이제는 가족들과의 대화에서도 무의식중에 수시로 내뱉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여학생의 친구들도 모두 욕설을 남발했다. 욕설을 하지 않으면 대화진행이 안 될 정도였다. 친구들까지 모두 그 여학생처럼 놀림 당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일까? 모든 학생에게 그런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그 여학생처럼 특별한 사연이 있는 학생이건 그렇지 않은 학생이건, 우리의 10대들이 무차별적으로 욕설문화에 빠져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바로 이점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방영 이후에 청소년 욕설문화가 화제가 된 것이다.

과거엔 주로 '문제아'라고 불린 몇몇 아이들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욕설문화를 주도했다면 이젠 10대 전체가 욕설문화에 가담하고 있다. 한 현장 교사는 인터뷰에서 "아이들에게 욕은 이제 욕이 아니다. 또래가 쓰는 은어일 뿐이다"라며 "욕은 청소년들의 일상어처럼 변했다"라고 하기도 했다. 전교 1등도, 학급 모범생도, 평범한 여학생들도 거의 누구나 욕설로 대화한다. 버스에서도 청소년들의 욕설 대화가 수시로 들리고, 심지어 교사가 옆에 있어도 욕설을 내뱉는다고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EBS가 2011년 말에 중·고생 각각 2명의 호주머니에 소형녹음기를 넣어두고 등교 후부터 점심시간까지 그들의 대화내용을 모두 녹음해 분석한 적이 있다. 그 몇 시간 사이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194차례 욕설을 내뱉었다. 오전 시간 대부분은 수업시간이기 때문에 대화자체가 불가능하다. 잠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다 합쳐 실제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일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200차례에 가까운 욕을 한 것이다.

요즘 10대들 사이에선 힙합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힙합의 랩도 욕설문화에 한몫하고 있다. 힙합은 원래 미국에서 생겼을 때부터 흑인의 욕설문화와 관계가 깊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도 욕설문화와 결합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청소년들 사이에서 누가 더 욕을 잘 하나를 겨루는 '욕배틀'이나, 부모를 비롯한 연장자에게 욕설을 하는 '패드립'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너무 경직된 시선으로 볼 것이 아니라 10대의 독특한 문화 정도로 인정해주자는 주장도 나타난다. 욕설이 10대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현실의 폭력성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 10대들이 특별히 부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욕설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폭주하는 10대의 욕설문화를 이렇게 안이하게 보는 것엔 문제가 있다. 2011년에 한 여고생이 자살했는데, 친구들로부터 욕설을 들은 것이 그 원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의 학교폭력 조사에선 신체폭력이 21%, 언어폭력이 18%로 나왔다. 욕설도 언어폭력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욕설을 남발하는 가운데에 정신적으로 더 황폐해지고, 폭력적 언행에 무감각해지며, 어휘력이 줄어들고, 자존감이 떨어지게 된다. 말은 사고를 반영하고, 사고는 다시 말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 청소년들의 욕설문화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입시경쟁으로 붕괴돼가는 학교의 교육공동체성을 복원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청소년 #하재근 #컬처톡 #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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