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의 국립묘지화 추진, 그 긴 사연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5.05.04. 10:26

수정일 2015.11.19. 20:35

조회 1,878

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40)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긴 사연 담긴, 효창공원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는 봄날의 효창공원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는 봄날의 효창공원

전자제품을 사거나 A/S를 받으러 용산 전자상가에 갈 때마다 가까워서 꼭 들르는 곳이 효창공원(용산구 효창동)이다. 요즘 같은 봄날 효창공원에 들어서면 초록과 연두빛의 울창한 수목들이 반겨줘 상쾌한 기분이 든다. 공원 입구에 있는 연못 습지에 사는 개구리와 맹꽁이들의 합창소리가 방문객을 흥겹게 반겨주었다. 귀엽게 지저귀는 새들 노랫소리, 화사한 꽃과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난 고즈넉한 산책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에 손꼽힐만했다. 이처럼 인근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효창공원은 알고 보니 조선후기부터 근현대사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와 사연이 깃든 곳이었다.

효창공원에 들어서면 연못에 사는 개구리, 맹꽁이들이 합창하며 반긴다

효창공원에 들어서면 연못에 사는 개구리, 맹꽁이들이 합창하며 반긴다

효창 공원(孝昌公園)은 원래 조선 제 22대 정조 임금의 큰 아들로 세자책봉까지 받았으나 5살 어린 나이에 죽은 문효세자와 몇 달 후 죽은 그의 어머니 의빈 성씨의 묘원인 효창원(孝昌園)이 있던 자리였다. 참고로 능(陵)은 왕과 왕비의 묘를 말하고, 원(園)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나 세자빈의 묘를 이른다. 묘역이 넓고 송림이 울창했던 이곳은 안타깝게도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주둔지로 이용하면서 무덤들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삼릉으로 강제로 이장했고, 묘역을 훼손하여 효창공원으로 만들었다.

과거 조선왕조의 묘원답게 수목이 울창하고 양지바른 산책길이 나있다

과거 조선왕조의 묘원답게 수목이 울창하고 양지바른 산책길이 나있다

이후 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치신 애국지사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 된다. 해방 후 1946년 김구 선생이 일본군 숙영지를 철거하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등 삼의사의 유해 와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등 독립운동가 묘소를 이 공원으로 이장했다. 1949년 통일의 한을 품고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돌아가신 후 김구 선생 또한 평소 유언에 따라 동지들 곁에 안장되었다. 선생의 묘소 앞에는 2002년 개관한 백범김구기념관이 있다. 그런 역사를 품고 있는 효창공원은 사적 330호이기도 하다.

효창공원엔 효창운동장과 반공투사 위령탑도 자리하고 있다. 1956년 당시 이승만 정부는 독립 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는 발표를 한다. 하지만 김두한 의원이 "효창공원의 선열 묘지는 성묘이며, 이 성묘를 함부로 파서 헐어 트리는 것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친 선열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 결국 효창운동장 공사중지건의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되었고, 현재 규모 정도로 축소해 축구장을 지었다. 이 축구장이 바로 지금의 '효창운동장'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공원에 골프장을 만들려는 공사를 시도하였고, 결국 효창공원에 반공투사 위령탑, 백범 김구 선생의 묘 옆엔 노인회관이 세워졌다. (위키백과 인용)

7인의 독립운동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의열사(義烈祠)

7인의 독립운동가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 의열사(義烈祠)

공원 왼쪽으로 난 길로 산책을 하다 맨 먼저 의열사(義烈祠)와 마주쳤다. 의열사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녕(1869~1940), 국무위원과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1881~1945), 광복군을 창설하고 군무부장을 지낸 조성환(1875~1948), 일왕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진 의사 이봉창(1900~1932), 상해 의거의 주인공인 의사 윤봉길(1908~1932),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인 백정기(1896~1934) 등 임정 수반과 독립운동가 7인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다.

임시정부수립일인 4월 13일에는 합동추모제가 매년 시행되고 있다. 사당 안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훼손을 이유로 문이 잠겨 있었다. 의열사 사당에 들어가 참배를 하려면 공원 관리 사무소에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효창공원 관리 사무소: 02-2199-8823)

우리의 근현대사 역사 박물관이기도 한 백범김구기념관

우리의 근현대사 역사 박물관이기도 한 백범김구기념관

의열사 맞은편에 있는 근현대사 역사박물관이기도 한 백범김구기념관에도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서 김구 선생의 좌상이 특유의 푸근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는 기념관은 김구 선생의 일대기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찬찬히 짚어볼 수 있는 박물관이다. 힘세고 부강한 나라보다는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 겨레의 큰 스승 김구 선생(1876~1949)의 삶과 유업을 계승하고 추모사업을 봉행하기 위해 2002년 개관했다.

구한말과 근현대사를 치열하게 살다간 선생의 삶을 찬찬히 둘러보니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목도하는 듯 했다. 2층의 전시실에서는 이봉창·윤봉길 의사 등 독립투사들의 의거 내용과 기록문서·편지, 임시의정원 회의록과 임시정부 시정방침, 각종 증명서와 수료증 등도 볼 수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오래된 고목나무가 백범 김구 선생의 묘를 지키고 서있다

오래된 고목나무가 백범 김구 선생의 묘를 지키고 서있다

백범(白凡)이라는 김구 선생의 호에 담긴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 옥중에서 호를 백범이라고 바꾸었다. 언뜻 '흰 호랑이'라고 생각했던 백범의 의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미천하고 무식한 백정(白丁)의 백(白)과 범부(凡夫)의 범(凡)자를 따서 호를 삼은 것이다. 천한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선생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자는 뜻이라고. 1949년 6월에 돌아가신 백범 김구 선생 묘역은 당시 국민장을 통해 유해가 안장된 묘소로서 백범기념관 위쪽에 위치해 있다.

■ 백범김구기념관

 ○ 홈페이지 : www.kimkoomuseum.org

 ○ 관람 문의 : 799-3450 (매주 월요일 휴관)

푸르른 소나무들이 뒤로 서있는 삼의사(三義士)의 묘, 맨 왼쪽이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푸르른 소나무들이 뒤로 서있는 삼의사(三義士)의 묘, 맨 왼쪽이 안중근 의사의 가묘다

길은 자연스레 삼의사(三義士)의 묘와 마주했다. 삼의사란 일제에게 사형 당했거나 옥중 순국한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의사를 말한다. 1946년 의사(義士) 3인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엔 3개의 묘소와 비석이 있다. 삼의사 같은 분들을 '순국선열'이라고 한다. 순국선열이란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에 순국한 독립운동가를 뜻하고, 애국지사는 살아서 8·15 광복을 맞은 독립운동가를 뜻한다.

김구 선생은 삼의사 장례식 추모사에서 "그 세 사람을 보낸 나만이 살아 있으면서 아직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3열사에 대하여 부끄럽기 한량없고 회한을 금할 수 없다…그들 지하에 불귀의 손이 된 수만 수천의 동지들의 사심 없는 애국의 지성을 본받아 하루바삐 통일된 우리 정부 수립이 실현되기 위하여 3천만과 함께 분골쇄신 노력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3개의 묘소 옆에는 유골이 없는 가묘(假墓)가 있다. 이 가묘는 안중근 의사를 위해 남겨놓은 가묘로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게 되어 국내로 운구될 경우 이 가묘에 공식 안장할 예정이다. 안 의사의 유해는 104년이 지난 아직까지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임정 요인의 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인 이동녕과 임시정부 국무장관으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9월 중국에서 숨진 차이석 그리고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역임하고 귀국 후 숨진 조성환 선생 등 애국지사 3분의 유해를 안치한 곳이다. 삼의사묘와 마찬가지로 3개의 묘소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요즘 들어, A급 전범의 직계후손이기도 한 일본의 아베 총리가 지난 세월 큰 상처와 피해를 입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게 용서와 화해는커녕 도를 넘는 극우주의, 자국 이기주의를 보이고 있어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효창공원을 국립묘소로 지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에게 국가가 예를 다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국립묘지화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정신을 계승·유지하며 민족정기를 고취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효창공원

 ○ 교통편 : 6호선 효창공원역 1,2번 출구 도보 10분

 ○ 관리 사무소 : 2199-8823

김종성 시민기자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효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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