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일보다는 삶이 더 어렵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5.01. 14:10

수정일 2015.11.16. 06:04

조회 769

나무ⓒ이재복

가족이란 개인의 삶을 위한 중심부이자 본거지이자 우리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곳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가정을 가꾼다.
우리는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산다'.
-- 대니얼 J 레빈슨, 《여자가 겪는 인생의 사계절》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72

'계절의 여왕'이자 이른바 '가족의 달'이라는 5월에는 특별한 날이 많다. 아이와 부모와 성년이 되는 젊은이와 스승을 기념하는 날마다 행사가 연이어진다. 왜 그리 한꺼번에 사랑과 감사를 몰아 바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름다운 날이니 좋은 사람들과 서로 축하하고 축복하라는 뜻이리라 어림한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산다'는 말의 간결하고도 강렬한 의미처럼, 집은 삶의 근거이자 삶 자체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만나는 가족은 삶을 함께하는 사람이면서 그 역시 삶 자체다. 분명 타인이면서 타인만일 수 없는, 민낯의 나 자신이기도 하다. 가장 가깝고 가장 편안하다. 가장 익숙하고 가장 내밀하다. 가족이라면 '부모, 자식, 형제 따위 한 혈통으로 맺어진 육친' 즉 혈육(血肉)을 일차적으로 떠올리게 되고, 그것은 우리의 목숨에 비견되는 피와 살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일한다. 때로는 힘겨워도 참는다. 가족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모욕과 부당한 처사조차 마땅히 견뎌야 할 무엇이 된다. 그것은 지극히 원초적이면서 동시에 거룩한 본능이다. 우리가 어머니와 아버지와 형제와 자매와 자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울컥'하는 것은 그들이 나를 위해, 내가 그들을 위해 감수했던 것들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커튼을 들춰 무대 뒤를 들여다보면 뜻밖의 것들이 드러난다. 가족이라는 그토록 아름다운 이름이 때로 힘이 아니라 짐이 되기도 한다.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살기'보다는 '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밖의 일이 너무 경쟁적이고 치열하다 보니 집에서는 모든 긴장을 풀고 널브러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내가 '쉬자'면 다른 가족이 '일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가족을 위해' 일하다 보니 '나를 위해' 해야 할 무언가를 놓쳐 버리는 일도 있다. 그것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되지만, 가족을 포함한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주었으나 받지 못함은 착취이고, 착취는 보상을 낳는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미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장 많이 알고 이해할 것 같지만 남보다도 까마득히 모르는 경우도 숱하다. 밖에서 받은 상처를 집에서 치유하기는커녕 더 큰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라는 단위가 공동체에서 이탈해 고립되면 그 폐쇄된 공간은 어느 곳보다 위험해진다.

5월이면 집 근처의 큰 공원이 분주해진다. 바리바리 도시락을 싸든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몰려든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얼굴이 5월의 햇살처럼 빛나는 건 아니다. 몰래 묻어둔 갈등과 쌓인 원한, 풀리지 않은 숙제들을 김밥 속에 꾹꾹 눌러 말고, 남들과 같은, 남들에게 보여주는 '가족'을 짓시늉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보다는 삶이 더 어렵다. 훨씬 많은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나를 꼭 닮은 이상한 사람들, 내 곁의 가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내가 되어 그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

#김별아 #가족 #5월 #빛나는말 #가만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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