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마을이야기] 돌아온 큰 언니, 여성주의를 외치다

내 손안에 서울

발행일 2015.04.09. 13:14

수정일 2015.04.0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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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 사회적경제지원단 단장 김연순 씨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두 단어가 있다. '여성주의'와 '마을'이다.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 생태지향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국여성민우회와 행복중심생협에서 20년 넘게 활동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활동들은 모두 마을을 바탕으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서울시 여성 명예 부시장으로도 위촉된 그를 만났다.

마을로 돌아온 큰언니, 김연순 도봉구 사회적경제지원단 단장

마을로 돌아온 큰언니, 김연순 도봉구 사회적경제지원단 단장

김연순 단장이 2013년 마을기업인큐베이터로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많은 이들이 돌아온 도봉의 큰언니를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김연순 단장 역시 다시 돌아온 마을이 반가웠다.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회장 등의 직책으로 마을을 떠나 중앙에서 활동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10년 동안 중앙에서 활동하면서 전체적인 판을 바꾸는 사업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며 누렸던 즐거움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어요.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필요를 듣고 그걸 바탕으로 사업을 하는 일들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행복중심생협 이사 임기가 끝나자마자 지역으로 돌아갈 거라고 늘 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생기면서 마을 안에서 협동조합의 꿈을 꾸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합의의 원칙으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그 어느 단체보다 민주적이지만 실제적으로 운영하려면 예기치 못한 복병과 난관에 부닥치기 일쑤다. 김연순 단장은 1989년 창립한 행복중심생협에서 자신이 겪어온 일들이 마을 안에서 협동조합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직접적인 도움을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마을로 돌아와서 도움을 받은 건 정작 자기 자신이었다고 한다.

"여성민우회도 그렇고 행복중심생협도 그렇고 그간 주로 만났던 대상이 30~50대 여성들이었어요. 그런데 마을기업인큐베이터로 활동하면서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정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택배협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는 5~60대 남성분들, 청소년교육과 관련된 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기도 했고요. 그런 경험이 자극도 되고 신기하면서도 즐거웠어요."

김연순 단장이 만난 사람들은 도봉구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회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지만 굳이 어느 단체나 모임에 소속되어 활동하지는 않는 사람들, 매일 일터로 나가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사람들. 그런 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모습은 그에겐 적잖은 놀라움이었다.

"지역의 시민단체나 기관들이 자신의 활동영역에서 열심히 일을 해내면 지역사회나 마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죠. 그렇지만 대의나 비전만을 생각하며 활동하다 보면 정작 마을 사람들이 마을에서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놓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자신이 마을에서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기발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고 마을에 꼭 필요한 일들을 만들어요. 그게 참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조언해주자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열심히 듣고 배웠어요."

그러나 사실 김연순 단장이 마을로 돌아와 만났던 활동들은 그가 그동안 해왔던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시와 자치구의 주민제안 사업은 행복중심생협에서 3년째 진행해 온 협동복지사업과 비슷하다.

"평범한 주민이 3인 이상 모여 공동체를 지향하는 활동을 하고자 할 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조합원들이 매월 일정액의 돈을 모아 기금을 만들었어요. 그게 바로 '협동복지금'이에요. 총 1,000만원의 기금을 모아 200만원씩 5군데를 지원했는데 첫해부터 28곳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죠."

도봉구에서는 육아놀이터 '다행'과 여성협동조합인 '감좋은공방'이 행복중심생협의 협동복지금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여성주의 활동가 김연순, 그 시작은 여성민우회

"대학시절, 여성학 강의를 듣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똑같이 활동해도 리더로 추대되는 건 남학생이고 여학생들은 보조적 역할에만 머무르도록 요구받더라고요. 그게 늘 답답했고 불만이었는데 그 이유를 여성주의를 통해 찾을 수 있었어요. 여성학은 사회구조적 모순을 깨우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여성인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남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죠. 여성학을 통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해요."

이효재 선생의 책으로 여성학 공부를 시작했다던 김연순 단장은 결혼 후 20대 후반, 이효재 선생이 초대회장으로 있는 한국여성민우회에 가입한다.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시작된 행복중심생협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행복중심생협은 안전한 농산물, 친환경적인 농산물을 유통시키며 시작된 생활협동조합이다.

"안전한 친환경 농산물을 구입, 유통하는 과정을 통해 가공식품 아니면 농약으로 범벅이 된 수입 식자재들로 위협받는 우리의 식생활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땅과 농민을 살리고 그걸 먹는 소비자도 살리자는 취지의 생협이죠."

김연순 단장이 살고 있는 도봉구가 한국여성민우회의 첫 지역지부가 되었다. 그때부터 상근활동가로 시작해 간사, 사무국장, 지부대표 등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생협연합회 교육위원장, 이사장, 연합회 회장까지 김연순 단장의 활동 영역은 점점 더 넓어졌다.

이렇게 돌아온 마을에서 그는 다시금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마을활동을 계속 하다보면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그 가능성 중 하나가 사회적경제인데, 그동안 열심히 잘해오던 여성들이 출자나 사업적인 진전 등의 단계에서 스스로 결정하는 대신, 남편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자기주도성이 부족한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사회적경제를 위한 여성주의 학교'예요. 사회적경제를 통해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충만하게 만들고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커리큘럼으로 여성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사회적경제와 젠더'라는 주제로 교육을 기획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서울의 여성과 마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온 김연순 단장은 최근 서울시 여성 명예부시장으로 위촉됐다. 서울시 여성 명예 부시장으로서 그의 포부는 무엇일까.

"같은 여성으로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어떤 필요를 느끼고,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보다 잘 알고, 또 깊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이라도 먼저 앞서서 경험해봤던 만큼 여성들의 절실함에 더 잘 반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쌓아온 네트워크나 활동들을 기반으로 마을에 여성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마을활동가들, 마을활동을 꿈꾸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일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필요를 서울시에 가감 없이 전달하고, 정책 집행 과정에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출처 : 서울마을이야기 vol.26(www.seoulmaeu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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