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요리 배워야 하는 시대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3.17. 16:04

수정일 2015.11.17. 18:17

조회 1,164

삼시세끼ⓒ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88

전통적으로 요리는 남자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주방에 출입하는 걸 절대금기로 여겼고, 젊은 사람들도 남녀를 불문하고 주방에 출입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렇게 좋게 여기지 않았었다. 과거엔 바깥일에 힘을 다 하면서, 여자들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전형적인 남성상이었다. 하지만 이젠 요리하는 남자가 멋진 남자로 받아들여진다.

남자 요리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결과를 보면 연관 심리키워드로 '잘하다, 귀엽다, 좋은, 괜찮다, 건강한, 근사, 먹고 싶다, 섹시' 등의 말들이 등장한다. 남자 요리사로 빅데이터 분석을 하면 연관 심리키워드로 '매력적, 각광받다, 친절한, 인기 있다, 신기하다, 새로운' 등이 등장한다. 남자가 요리하는 모습이 귀엽고, 괜찮으며, 근사하고, 섹시하고, 매력적이고, 새롭게 느껴진다는 뜻이겠다.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엔 집안일은 여자들이 책임지고 남자들은 바깥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젠 여자들이 바깥일까지 하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집안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회가 산업적으로 고도화, 도시화하면서 거친 남자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도 이런 변화의 한 이유다.

과거 전통적인 사회에선 바깥에 나가 온 힘을 다해 일할 남자의 중요성이 매우 컸다. 땔감 구하기와 농사 등 모든 일들이 사람의 힘을 필요로 했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도 물리적 힘이 중요했다. 바깥에서 힘 쓰는 데에 집중하는 남자가 각광받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서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에 남자가 몰두하는 것은 힘의 낭비였다.

그러나 고도화된 산업사회의 도시에선 힘의 중요성이 훨씬 약해졌다. 여자들도 얼마든지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젠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이고 부드러운 남자들을 찾게 됐다. 요리하는 모습은 바로 그 남자가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요리하는 남자의 인기가 치솟는 것이다.

최근 요리하는 모습을 통해 절대호감으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차승원이다. 그는 원래 차가운 도시 남자, 터프남 등의 이미지였는데 <삼시세끼>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선보이면서 부드럽고 가정적인 남자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원래 차승원은 남자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젠 남자의 요리가 당연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차승원의 이런 변화가 시대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자들은 차승원이 능숙하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며 '저 남자가 얼마나 평소 가정일을 열심히 했으면 저렇게 요리를 잘 할까'라며 판타지에 빠져든다. 이런 배경에서 남자의 요리는 이제 섹시한 매력을 뜻하게 됐다.

종편에서 방송하는 <냉장고를 부탁해>도 남자 요리사들을 등장시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신동엽과 성시경이 반찬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신동엽, 성시경은 오늘 뭐 먹지?>라는 요리프로그램도 인기를 모은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아빠 어디가> 같은 인기 육아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아버지들이 요리를 했다. <패밀리가 돌아왔다>, <정글의 법칙> 등도 남자의 요리로 인기몰이를 했다.

여자들의 가사, 육아 스트레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과거엔 가사와 육아에 인생을 바치는 것을 여자들이 당연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함께 분담해주는 남자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바로 이것도 요리하는 남자가 뜨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남자도 남자가 요리하는 방송을 즐겨 본다. 최근 혼자 사는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요리의 필요성을 느끼는 남자들도 늘어났다. 그들은 여자가 안내해주는 요리법보다 남자의 요리방송에 동질감을 느끼면서 요리지식을 습득해간다. 그리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시청자들이 남자의 요리를 선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특히 여자들이 남자가 요리하는 모습에서 강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이제 짝 없는 남자들은 요리학원 등록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 됐다. '귀엽고, 근사하고, 섹시한' 남자로 보이고 싶다면 말이다.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