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런 인간이 이런 글을 썼을까?"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3.13. 13:43

수정일 2015.11.16. 06:06

조회 441

연인ⓒ호호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에는 진실이 없다.
선한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고, 변명하는 사람은 착하지 않다.
참으로 아는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참으로 알지 못하다.
--노자 도덕경 제81장 <신언불미>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5

책장을 정리하다가 문득 얄따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저자에게 증정 받은 뒤 읽지 않고 던져두었던 것인데, 손에 잡힌 김에 뒤적이다가 내처 한 권을 끝까지 읽어버렸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저자와의 짧은 만남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리하여 책을 읽으며 내내 감탄했다.

"어떻게 그런 인간이 이런 글을 썼을까?!"

미려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소박하고 정갈하다. 겸손한 어투였지만 지성과 교양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삶에 대한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도 있다. 직업적인 작가가 아닌 이가 썼다기에 '이런 글'은 매우 훌륭한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런 인간'을 직접, 생생하게 겪었다는 것이었다.

작가라는 직업이 가진 몇 되지 않는 장점 중에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있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면 지위와 역할에 따라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이를 악물고 만날 수밖에 없을 테다. 하지만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말마따나 '쓰면 작가, 안 쓰면 백수'일 수밖에 없는 존재의 조건상, 작가는 배고프고 외롭기만 각오하면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의외로 낯을 많이 가리는 나는 조심조심 무겁지 않고 나쁘지 않은 관계로만 사람들을 만나려 애써왔다. 그런데, 우연히 일 때문에 만난 그는 시쳇말로 하자면 나를 '멘붕' 시켰다. 그는 내용과 형식면에서 자기가 쓴 글과는 눈곱만큼도 닮지 않은, 무례하고 오만하고 괴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금껏 내가 접하지 못했던 극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글과 글을 쓴 이가 같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작가들끼리도 서로 만나지 않고 글만 읽었을 때가 더 좋았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한다. 글은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다. 용감하게 맨얼굴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공들여 화장한 얼굴로 나타날 때도 있다. 어쨌든 '본판 불변의 법칙'은 통한다. 그래서 아무리 필사적으로 가려도 눈 밝은 독자는 행간의 말간 민낯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 아름다운 말, 수줍은 변명, 박학다식한 내용에 그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깜박 속아 넘어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린 날에는 내가 어려서 사람을 모르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름 어른이 되었다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고, 그 속임수가 빤해도 속아주려면 얼마든지 속아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교묘한 진실게임이라도 대저 투박하고 못생긴 것보다는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이 거짓이기 십상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에 더 많이 속아 넘어가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이미 실체를 보아버린 뒤라면 말과 변명과 내용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 추악한 속내가 가증스럽다. 교묘한 윤색과 과장된 미화야말로 거짓의 가장 큰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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