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장충동 태극당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5.03.11. 14:30

수정일 2015.11.19. 20:47

조회 4,370

태극당

두 바퀴로 떠나는 서울여행 (34) 장충동 태극당

한결 바람이 부드러운 날, 자전거를 타고 남산에 올랐다가 장충동 국립극장 방향으로 내려올 때가 있다. 다름 아닌 빵집이자 제과점인 '태극당'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 전북 군산에 있는 이성당이라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은 장충동의 태극당이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창업주 故신창근씨가 태극당을 창업한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해방 이전 일본인 제과점에서 일했던 신씨는 해방이 되자 주인장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두고 간 장비를 받아 명동에 제과점을 열고 '태극당'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이후 1974년 현재의 장충동으로 옮겨 왔다. 그가 만들어 팔 수 있었던 것은 '셈베이'라고 불렀던 일본식 과자나 유가 사탕 등 캔디류 제품이 대부분이었지만 태극당은 만남의 장소나 선을 보는 곳으로 당시 젊은 남녀들에게 인기가 높았단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베이커리' 시대에 '제과점'의 옛 맛을 그대로 지키는 태극당의 존재는 언제가도 새롭고 새삼스러운 기분이 드는 곳이다.

"창업 이래 줄곧 같은 맛과 모양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처럼 태극당은 건물 외관부터 옛날 그대로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어 참 인상적이다. 태극당 간판 위로 써 있는 '菓子 中의 菓子 (과자 중의 과자)', 서울에서 제일 오래되었다는 빵집의 구호가 여행자를 웃음 짓게 한다.

태극당

70년의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허름해진 건물 외관은 올해 5월에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새로이 단장을 한단다. 고풍스러운 간판이나 글자가 사라지겠구나 아쉬웠는데 현재의 간판과 글씨 디자인은 최대한 보존할 예정이라니 다행이다.

빵과 과자를 편안히 앉아 먹을 수 있는 넓은 매장에는 예전 동네 제과점에서 흔히 보았던 소박한 보리빵, 사라다빵과 솥뚜껑처럼 넓은 버터케이크, 형형색색의 과자들이 예쁘게 놓여있다. 높은 천장 위에는 따뜻한 빛을 발하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으며, 팔각형 금붕어 어항, 넉넉한 테이블 옆으로는 수석이 단정히 자리 잡고 있다. 요즘의 세련되고 화려한 빵집과 비교하면 촌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재미있다. 빵집 곳곳에 시간과 역사가 묻어있는 빵집만이 가질 수 있는 정취가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태극당 빵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때 그 시절의 빵 포장지를 아직도 그대로 써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장지만이 아니라 빵의 종류와 맛도 요즘 빵과는 다른 예스러운 것들이 많아 먹어보기도 전에 눈이 즐겁다. 특히 옛 과자인 다양한 양과자와 월병 등을 빵과 함께 판매하고 있어 나이 지긋하신 손님들이 많이 찾아올 만했다.

태극당 빵

이렇게 옛날 빵, 과자에서부터 현대식 빵 등 종류가 많다보니 미리 생각하고 찾아가지 않으면 고르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땐 직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좋다. 처음 왔다면 사라다빵, 카스테라, 모나카 아이스크림부터 먹어 보란다. 일종의 태극당 입문자용 메뉴다. 사라다빵은 부드러운 감자와 아삭아삭한 양배추가 버무려진 샐러드가 터질 듯이 꽉꽉 차 있다. 자극적인 양념의 맛이 거의 없고, 재료의 순수한 맛을 살린, 마치 어릴 적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준 듯한 담백한 맛이다. 태극당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대표 빵은 카스테라. 특유의 빈티지한 포장지부터 돋보이는 빵이다. 푸짐한 크기와 촘촘한 식감, 달걀의 진한 풍미가 느껴지는데 내 유년시절 그랬듯 우유와 함께 먹으면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목장우유와 계란 노른자를 넣어 만든 천연 아이스크림'이라고 포장지에 친절하게 써 있는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겉으론 딱딱할 것 같지만 입안에 넣으면 금세 사르르 녹는데 달지도 않고 우유 맛이 진하게 나는 게 자꾸만 먹고 싶어지는 맛이다. 1960년대엔 경기도 남양주에 목장을 직접 지어 우유와 달걀을 공수해 빵과 과자를 만들어냈다고 하니 태극당의 오랜 역사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이성당

군산 이성당 빵집이 그랬듯, 오래된 빵집의 대표 메뉴들은 겉으론 특별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근히 생각나는 맛을 지니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태극당 또한 특별하게 보이지도 않고 투박하지만 정감이 가는 게, 집에서 먹는 김치찌개, 된장국처럼 '엄마 손 맛 나는' 빵들이다. 나처럼 다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세계 10대 요리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맛있고 비싼 요리는 다 먹어보았을 요리사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사람들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들 중 단 두 사람만이 캐비어와 송로버섯이라고 대답했고, 나머지는 모두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 등 흔하디흔한 음식을 찾았다. 우리로 치자면 떡볶이, 어묵, 김밥과 같은 단순 소박한 음식인 이것들은 그들이 세계적인 요리사가 되기 전에 제일 즐겨 먹었던 음식이었다. 세계 최고의 요리사들에게 있어 최고의 음식은 바로 추억인 셈이다. 추억은 이렇듯 힘이 세다. 우리의 육체를 지탱하는 것이 음식이라면, 우리의 정신을 지탱하는 것은 추억이다.

서울은 빠르게 변모하는 도시다. 피맛골, 동대문 운동장 등 가치 있는 공간들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 서울 시민들이 유달리 자신의 유년시절, 청춘을 보낸 거리와 그 거리를 채웠던 상점과 가게들을 그리워하는 데는 서울이란 도시의 휘발성도 한 몫 하지 않을까 싶다. 태극당은 새것만 좋아하는 도시, 옛 공간이 품고 있던 개인의 소중한 추억이 날아가든 말든 별 관심이 없는 이 무정한 도시에서 지칠 때 찾아가고 싶은 공간이다.

○ 위치 ; 3호선 전철 동대입구역 2번 출구 바로 앞 (주차가능)

○ 운영시간 ; 오후 9시 30분까지 (연중무휴)

○ 문의 ; 2279-3152

김종성 시민기자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추억 #빵집 #태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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