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드맨>의 한국비하 논란 어떻게 볼까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3.03. 15:20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86
제87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촬영상, 감독상, 각본상 등을 받은 영화 <버드맨>이 한국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극중에서 주인공의 딸이 어느 꽃집에 가서 '여기 꽃에선 모두 김치처럼 역겨운 냄새가 난다'(It all smells like fucking kimchi)라고 했기 때문이다. 꽃집의 주인이 동양인 외모여서 아마도 한국인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한국인이 파는 꽃에선 김치처럼 역겨운 냄새가 난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발언인 것이다.
이에 대해 <버드맨>의 국내 홍보사에선, 한국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단지 극중 캐릭터가 신경질적인 성격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 설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입장에선 불쾌감이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서 등장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등장시킬 수 있는 소재도 무한하다. 그런데 왜 하필 김치를 콕 집어서 등장시켰단 말인가?
이것은 제작진들이 한국인의 정서를 무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적 상장이고, 이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을 때 한국인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인 상점 주인을 옆에 두고 냄새가 난다로 했을 때도 역시 한국인들이 안 좋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면 그런 설정을 아예 뺐을 것이다. 김치 말고도 등장인물의 성격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헐리우드는 과거부터 한국에 대해 무신경해왔다. 과거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로 국내에서 엄청난 사랑을 받은 맥라이언은 급기야 한국 기업의 광고모델로까지 캐스팅됐었다. 그런데 미국으로 가 '동양의 한 나라에서 우스꽝스러운 광고를 찍고 왔다'는 식으로 한국을 희화화하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광고계약이 바로 해지됐고, 그 이후 맥라이언의 영화는 국내에서 흥행을 하지 못했다. 맥라이언이 한국인의 정서를 전혀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폴링 다운>에선 한국인 상점 주인이 수전노로 묘사됐다. <매쉬>나 <007 어나더데이>에선 한반도가 마치 동남아 아열대 지역인 것처럼 그려졌다. <레모>라는 영화에선 한국 노인이 냉장고에서 공깃밥을 꺼내 먹는 장면이 나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을 조롱하는 영화로 알려졌던 <더 인터뷰>에선 '개고기 안 먹는 나라로 가자'는 대사가 나왔다. 이것은 북한과 대한민국을 싸잡아 희화화하는 것이었다.
한국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소재로 하면서도 별로 조사도 하지 않고, 한국인의 반응도 무시하기 때문에 한국인을 희화화하는 설정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번 <버드맨> 논란도 그런 한국인에 대한 무신경의 연장선상에서 터져나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인들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면 헐리우드 제작진들이 한국과 관련된 것을 표현할 때 좀 더 조심하게 만들 수 있다. 최근 들어서 한국의 영화시장이 헐리우드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 됐기 때문에, 이쪽의 목소리를 그쪽에서 무시할 수 없다.
그건 그런데,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대중문화 상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선 얼마나 신경 쓰고 있을까? 헐리우드가 한국을 무신경하게 표현할 때 우리는 분노한다. 이번 <버드맨>에서의 논란 장면은 극중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나온, 잠깐 스쳐가는 장면이었다. 이런 설정에도 한국인은 분노했는데, 우리의 문화콘텐츠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꼼꼼하게 보고 있을까?
한국 TV 프로그램에선 동남아나 중국비하가 다반사로 등장한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출연자에게 동남아 사람 같다고 하거나 멋지게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출연자에게 중국인 같다고 하는 장면들이 툭툭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한없이 관대하다. 농담이고 잠깐 스쳐지나가는 장면인데 뭐가 문제 되느냐는 식이다. 남을 볼 때와 자신을 볼 때의 잣대가 달라져선 곤란하다. 헐리우드 영상을 보는 깐깐한 시각으로 우리자신의 문제도 봐야 한다. 헐리우드엔 민감, 우리 자신엔 둔감. 이런 식이면 우리의 문화적 위신이 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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