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장은 두려운 그 순간부터

김별아(소설가)

Visit285 Date2015.03.06 15:50

싹ⓒ박민현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진정한 성장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4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을 떠나 기숙사로 들어갔다. 입시가 끝난 후 힘들었던 수험생활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겨우내 정신없이 놀아 젖히더니, 떠날 즈음에야 슬금슬금 걱정이 되나 보다.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선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설렘 더하기 불안’이란다.

그럴 것이다. 나 또한 부모님 곁을 떠나 상경한 것이 스무 살, 그때였다. 3월의 서울은 춥고 낯설었다. 낯설어서 더욱 추웠다. 꽃샘잎샘이 매서운 거리를 헤매다 가파른 골목을 기어올라 자취방에 닿으면 긴장으로 굳어진 몸이 무너지듯 풀렸다. 고향집에서 가지고 온 책은 몇 권의 시집과 고3 때 교재로 썼던 <수학의 정석>이었다. 외로울 때마다 울거나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대신 홀로 이불을 들쓰고 수학 문제를 풀었다. 수학은 공식을 좇아 열심히 풀면 딱딱 답이 나왔다. 하지만 삶에는 이런 정답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설렘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기대와 포부에서 비롯된다. 그런가하면 불안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세상이, 사람들이, 삶이 두려웠다. 세상을, 사람들을, 삶을 몰랐기에 더욱 두려웠다. 또한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두려웠고, 성인으로서 나의 행동과 선택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터무니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세상과 사람들과 삶을 알고 그에 대한 내 몫을 감당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까마아득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욕망하고 있는지, 내 힘은 무엇을 어떻게 견딜 만한지,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도 아마 그럴 테다. 앞으로 세상에 홀로 나서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치렀던 시험 문제들과 전혀 다른 문제들에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끝없이 오답을 적고 어쩌면 낙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답 없는 시험으로부터 도망쳐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깨달아가는 첫 번째 단초다. 때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과 이용을 당하고, 초라한 자리에서 굴욕과 모멸감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존을 훼손당하지 않고, 추락할지라도 바닥을 짚고 다시 일어날 수만 있다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리라.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믿음이 있다. 실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데서 수많은 두려움이 비롯되기 마련이므로.

어엿한 성년에, 고개를 들어 한참 치켜보아야 할 만큼 키 큰 아들을 여전히 못미더워 애면글면하는 것은 어미라는 이름을 가진 모두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내 무릎 아래를 떠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할 그에게 나는 별로 해줄 것이 없다. 나의 두려움을 오로지 내가 오롯이 감당했듯, 그도 마침내 자신의 두려움에 맞서야 할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다만 물러서지 않기를, 도망치지 않기를, 싸워야 할 때 싸우고 화해하고 용서해야 할 때 기꺼이 그러하기를… 응원할 뿐이다.

Creative Commons 저작자 표시 비영리 사용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