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롭게 빛나는 별들을 봐라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2.27. 15:25

수정일 2015.11.16. 06:07

조회 950

별ⓒShreenivasan Manievannan

별들을 봐라.
둘 사이에 거리가 있어도 빛나지.
조화롭게 빛나지 않는가?
--니체 《즐거운 지식》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3

어린 날, 나는 외톨이였다. 숫기와 붙임성이 없는 외톨이에게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어렵고도 두려운 일이었다. 내 안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어둠과 불안을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걸 남들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한없이 외로웠던 내가 누군가에게는 잘난 척하는 건방진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너는 나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 지레 담장을 치고 벽을 높였으므로.

더구나 계집아이들끼리의 일반적인 친교 방식은 나의 두려움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들은 시시콜콜한 일들까지 남김없이 털어놓기를, (실제로 별 것 아니지만 특유의 호들갑으로 한껏 부풀리기 일쑤인) 비밀을 공유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밀착되지 않으면 배척되었다. 친구가 되면 같이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하고 도시락을 먹고 화장실까지 함께 갔다. 그래야 친구, 단짝이나 짝꿍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비밀이 없는 어떤 관계를 꿈꾸지 않는다. 아니, 사람 사이에는 마땅히 비밀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성숙한 관계에서 비밀은 거짓과 달리 서로 존중해야 하는 나만의 (그리고 너만의) 영역이므로, 비밀이 없는 관계는 자아가 발달하지 않은 어린아이들끼리가 아니면 가능치 않다. 비밀을 가져야만 어른이다... 그런 혼자만의 생각을 앓고 있을 때, 우연히 읽은 니체의 말이 뭉근한 위안이 되었다.

생애 자체는 지독한 외톨이처럼 보이지만, 뜻밖에도 니체는 친구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애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친구'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위대한 사랑이란 '다만 친구를 아는 일뿐'이라고 놀라운 선언을 한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고도 중요한 점은, 니체에게 친구는 지친 몸을 파묻고 단잠에 곯아떨어지게 만드는 '푹신한 침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분명한 휴식의 공간이되 조금은 불편하고 어딘가 켕기는 '야전 침대'가 되라고 한다. 숙면보다는 선잠, 절반은 잠의 함정에 빠질지라도 절반은 여전히 깨어있기를 일깨우는 존재가 바로 친구라는 것이다.

별들이 촘촘히 흩뿌려진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비록 그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할지라도 별들의 거리는 우리의 어림셈을 훌쩍 뛰어넘는다. 현재 시점에서 지구에서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를 250만 광년으로 예측한다는 과학 정보를 굳이 들먹이지 않는대도 말이다. 하지만 그토록 까마아득히 먼 곳에 떨어진 채로도 별들은 조화롭게 빛난다. 그런 별들처럼 친구는 거리를 유지한 채로 욕심과 계산 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평등한 관계일 때 아름답다.

지금도 나는 친구가 많지 않지만 더 이상 외톨이는 아니다. 매일 만나 자질구레한 것까지 모두 알지 않아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다만 제자리에서 반짝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나의 별빛과 그의 별빛이 각각이 아름답고 어울려 아름다울 때, 우리는 따로 또 같이 빛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 별빛만큼이나 깊은 어둠과 상처를 아무런 설명 없이도 충분히 이해하면서.

#김별아 #별 #니체 #빛나는말 #가만한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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