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빵 뺑소니 해결한 네티즌 수사대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5.02.10. 13:00

수정일 2015.11.17. 18:43

조회 1,403

청주시에서 발생한 `크림빵 뺑소니` 사망사고 관련 CCTV 동영상ⓒ뉴시스

청주시에서 발생한 `크림빵 뺑소니` 사망사고 관련 CCTV 동영상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83

처음엔 그저 수많은 뺑소니 사건 중의 하나인 것처럼 보였다. 이렇다 할 단서가 없어서 미제 사건으로 끝날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스토리가 알려졌다. 임신한 부인의 임용고시를 도우며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남편이, 부인에게 줄 크림빵을 사 들고 귀가하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경찰의 수사가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유족 측이 좀 더 적극적인 수사를 요구했지만,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을 들었다고 한다. 네티즌의 분노가 폭발하자 결국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렸다. 사고는 1월 10일에 났는데 수사본부는 27일에서야 가동됐다.

네티즌은 경찰의 수사를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저마다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했고, 그 와중에 경찰이 엉뚱한 CCTV 영상을 공개하는 바람에 한 외제차가 용의차량으로 지목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러던 중 한 네티즌이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도 CCTV가 있다고 제보했고, 그를 바탕으로 마침내 진짜 범인의 차량을 특정할 수 있었다.

네티즌의 분노와 참여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에 대한 불신이 폭발하면서 일명 '네티즌 수사대'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란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이 사건해결이나 궁금증을 풀어가는 과정에 동참하는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이참에 네티즌을 조직화해서 아예 '누리꾼 과학수사대'를 창설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여기에도 큰 호응이 나타난다.

그전에도 네티즌의 참여는 종종 놀라운 활약상을 보여줬었다. 2010년에 이른바 '묻지마 로우킥' 사건은 한 10대 여학생이 6살 남자아이를 걷어차, 그 아이가 넘어지면서 얼굴을 계단에 부딪힌 사건이었다. 흐릿한 영상이 공개됐을 뿐이었는데 분노한 네티즌이 저마다 팔을 걷고 나서서, 사건이 벌어진 장소와 가해자의 정체를 모두 밝혀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관련해서도 네티즌이 SNS 글들을 분석해 국정원 계정을 추리해내기도 했다. 최근엔 <케이팝스타>에 출연한 박윤하가 민음사 박맹호 회장의 손녀라는 사실도 네티즌이 밝혀냈다. 네티즌 수사대는 아이돌이 무심코 올린 사진에서 눈동자나 숟가락 등을 정밀분석해, 그 사진이 찍힌 장소나 동석한 이를 밝혀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렇게 놀라운 능력의 네티즌이 수사에 참여하면 우리사회의 안전도는 더 올라가게 되는 걸까? 이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수사라는 건 누군가를 파헤치는 행위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민주공화국에서 모든 시민은 사적인 영역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때문에 수사는 공동체로부터 특별한 권한을 위임받은 공권력이 조심스럽게 행해야 한다.

아무리 공권력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마구잡이로 파헤치면 안 되는데, 불특정 다수의 수사는 그 선을 넘을 우려가 있다. 가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배우자나 자녀의 신상까지 털리는 경우도 있다. 과잉처벌도 문제다. 근대국가는 범죄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법으로 엄격하게 정해놓는다. 그런데 네티즌의 집단 처벌은 무조건 사회적 매장으로 폭주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말고식 막가파 수사도 문제다.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당시 네티즌 수사대에 의해 엉뚱한 사람이 가해자의 남편이라고 지목됐다. 한 초등학생이 가해보육교사라고 지목돼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그 자체로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내 손으로 직접 수사해 처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자세보단 경찰에 관련 정보를 제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경찰을 질타하며 불신만 하기보단, 경찰이 충분한 인력과 예산으로 수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있다. 어쨌든, 공적인 시스템에 대한 불신 속에 네티즌 수사대의 활동은 점점 활발해져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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