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가장 아프지만 좋은 방법

소설가(김별아)

Visit641 Date2015.02.06 15:37

ⓒkichune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페터 회(Peter Hoeg)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중에서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61

한겨울에 읽기에 적합한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뒤적이노라면 한여름에도 서늘해진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북구(北歐), 그 이름만으로 신비로운 그린란드의 냉기와 차가운 이성이 추리라는 장르와 기묘하게 어우러져 긴장을 더한다. 눈이나 얼음을 사랑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 주인공 스밀라는 이지(理智)와 열정을 동시에 지닌 수수께끼 같이 독특한 여성 캐릭터이다. 북구도 모르고 추리도 좋아하지 않는 남성 독자들이 유독 그녀에게 매혹되어 이끌리는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역시 남자에게 여자는 영원히 비밀스런 판타지여야 마땅한 것일까?!

스밀라의 말로 정의된 사랑 또한 눈과 얼음처럼 명징하다. 그녀는 사랑의 허풍과 과장과 현학을 비웃는다. 그건 작열하는 햇볕 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땅을 맨발로 딛고 선 사람들에게나 어울린다. 몸속의 피가 온천수처럼 끓어오르고 머리가 열기구처럼 둥실 떠오를 때에야 폭발하듯 사랑의 낭만과 격정을 토로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린란드 식’은 좀 다르다. 우울을 다룰 때에도 유럽식으로 행동을 통해 문제에서 빠져나오기를 바라기보다는, 가만히 어둠 속에 침잠하여 자신의 패배를 현미경으로 자세히 들여다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니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타인과의 관계에 몰두하기 이전에 자신부터 들여다본다. 더 내밀히, 더 자세히.

누군가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때의 상태는 말만큼 단순치 않다. 무수한 욕망과 불안이 급작스럽게 분출한다. 아무런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남김없이 솔직해진다면 상대는 나를 받아줄 수 있을까? 어둡고 더럽고 무서운 영혼의 허구렁은 오직 자신밖에 알지 못하기에, 잘 숨겨왔다면 그럴수록, 누군가에게 드러내기가 두렵다. 45퍼센트쯤, 절망이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걸 감싸주고 용서하고 이해한다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사랑이 아니지 않는가? 아이가 절체절명의 위험에 처했을 때 괴력을 발휘하는 어머니처럼, 사랑으로 그 깊은 구렁을 훌쩍 뛰어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45퍼센트는, 주체할 수 없는 희망이다.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팽팽한 줄다리기 가운데서 소박하고 여린 감각, 이를 테면 어리석음 같은 것이 희망의 편을 슬쩍 들어준다면, 그때가 바로 사랑에 빠진 상태이리라.

어렵다. 두렵다. 골치 아프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그럴수록 기어이 사랑해야 한다. 상대가 있어야 완성되는 것이 사랑임은 분명하지만, 사랑은 상대의 아름다움 혹은 치부를 파헤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낱낱이 밝혀주기 때문이다. 나를 아는 가장 아프지만 좋은 방법이 바로 사랑이다. 혹 세상이 이렇게 엉망이라서 사랑조차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이렇게 엉망진창인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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