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바보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5.01.16. 14:52
사랑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걸까요, 아니면 바보들만 사랑에 빠지는 걸까요?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중에서 |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8
어쩌다, 본의 아니게, 우연한 기회에 타인의 개별적이고 은밀한 삶을 엿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승객들이 엉성드뭇한 플랫폼에서 막차를 기다리다가, 지금껏 하나같은 둘이었다가 마침내 각자의 거처로 헤어져가야 하는 시간을 맞은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 초대받거나 허락되지 않은 타인의 시공간에 틈입하는 것은 결례가 분명하지만, 이때는 어쩔 수 없다. 모른 척 외면하기에는 그들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열과 빛이 너무 뜨겁고 눈부시다. 그들 또한 누군가 자신들을 힐끗거린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할 만큼 서로에게 몰두해 있다.
그들의 눈에는 만화처럼 '하트'가 뿅뿅 떠올라 있다. 아마도 만난 지 백일이 채 되지 않았거나 갓 넘었을 것이다. 흔하고 비싸지 않은, 그러나 그들에게만은 의미 깊고 값진 커플 반지를 낀 손가락을 깍지 껴 마주잡고, 곧 다가올 헤어짐이 안타까워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른다. 드디어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오자 서운함과 안타까움에 압도당한 연인들은 말마따나 아예 영화 한 편을 찍는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닿은 손끝을 거두지 못하고 문이 닫힌 후에도 열차가 터널 안으로 빠져들어 상대의 모습이 보이지 전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든다. 나는 남자를 플랫폼에 남겨두고 돌아선 여자와 함께 열차를 탄 덕분에 그들이 헤어지고도 헤어지지 못했음을 낱낱이 목도한다. 헤어지자마자 남자가 보내온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자, 울음기가 섞였던 그녀의 얼굴에 금세 웃음기가 번진다. 그토록 간명한 슬픔과 기쁨, 확연한 좋고 싫음이 가능한 조건은... 어리석음뿐이다!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바보처럼 계산하지 못하고,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치밀하게 이해득실을 따지고, 전후좌우의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사리분별이 확실하다면 절대 하지 못할 일들을 저지른다. 하지만 그런 바보들이 사랑의 기적을 만든다. 연인뿐만 아니라 부모, 형제, 동지, 혹은 범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행해지는 자기희생과 헌신의 기적은 기실 그 터무니없는 어리석음 덕택이다. 기꺼이 손해를 보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머리가 돌아가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하여 결국 어리석음이, 어리석은 열정이 지금껏 세상을 바꿔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이라는 '끓는 얼음'을 품고 살기엔 너무 차가운 삶의 빙하기, 각박해지는 세태에 젊은이들은 결혼이나 출산은 물론이거니와 사랑까지도 포기하기 일쑤다. 계산하면 할수록 손해가 자명하고, 상황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조건을 구비하다 보면 어느새 열정은 타기도 전에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젊음에게 사랑이 본능이나 유희를 넘어선 의무인 까닭은, 자신을 확장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실컷 어리석어보지 못한 사람은 한껏 지혜로워질 수도 없을지니.
그래도 아직은, 여전히 바보들이 남아있어 줘서 다행이다. 검은 터널을 지나는 막차의 유리창에 그 빛깔이 비치지는 못할지언정, 사랑에 빠진 행복한 바보의 볼에 떠오른 홍조만큼 아름다운 붉은 빛은 이 세상에 다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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