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백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시민기자 황정운

발행일 2015.01.06. 15:30

수정일 2015.01.13. 16:39

조회 1,831

2012년 시작한 뒤 3년째 계속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책 100권 읽기를 시작하며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책 읽기가 지겨울 때 어떻게 버티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언제 책 읽을 시간이 있냐는 질문과 더불어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책 읽기의 원동력은 책 속의 정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어려운 학술서적에 매달린 적이 많습니다. 더 어렵고 다양한 정보를 얻어서 내 글쓰기에 응용하고 내 사유의 세계를 확장해야겠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책 읽기의 목적이 행위가 아닌 책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2014년 초, 경영/경제학 책을 약 30권정도 읽었지만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이 많지 않음은 결국 책 읽기의 원동력이 책 속의 정보가 아니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에는 나 자신이 배우고 성장한다는 기분이 들지만, 내 관심에서 벗어난 정보는 결국 의미 없는 텍스트에 불과한 것이었죠.

황정운 시민기자의 서재

황정운 시민기자의 서재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보다는 '나는 왜 책을 읽을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더 많이 던져야 합니다. '나는 왜 책을 읽을까?'를 바꿔 질문하면 '나는 책 읽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와 같은 뜻입니다. 책을 읽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이며 나를 더 알기 위한 몸짓이자,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 있는지 물어보고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모두가 책을 많이 읽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가을 직장 부서에서 근처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고르기로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좀처럼 읽지 않는 소설을 아주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실용적인 경영학 책을 좋아합니다. 그때 제가 고른 책은 윤난지 작가의 책이었습니다. 일곱 여덟명이 가져온 책은 저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책을 향한 관심에는 위계가 없습니다.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나의' 책을 향한 관심에는 분명 편차가 있습니다. 그 편차를 확인하고 더 강화해 나가는 것.. 이것이 책 읽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내년에도 경영/경제학 책을 그리 많이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을 올 한 해 배웠습니다.

​​새로운 저자들과 참신한 출판사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책 읽기의 큰 즐거움입니다. 많은 텍스트를 읽고 나면 내용은 조금씩 기억이 나지 않고 희미해지지만 저자가 글을 전개하는 태도와 속도, 텍스트로 다 담아낼 수 없었던 방대한 사유의 세계, 저술의 성실함과 주장의 참신함, 이런 전반적인 느낌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납니다. 아울러 그런 '저자의 생각을 어떻게 기획한 뒤 어떤 편집방법과 레이아웃으로 독자에게 전달할 것인가?' 이것은 출판사의 몫입니다. 책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고 책 읽는 행위가 독서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제 생각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끝까지 제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책을 읽을 때 제가 받았던 감흥이기 때문이지요.

2012년에는 새로운 저자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재일지식인 서경식, 상명대 불어교육학과 박정자 교수, 이탈리아 출생 유대인 프리모 레비가 그들입니다. 서경식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서점에서 표지를 얼핏 보았던 기억이 있으나 왜 이렇게 늦게 이 분의 책을 읽었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제 사유의 틀과 글쓰기의 범례에 있어 따르고 싶은 훌륭한 선배가 되었습니다. 서경식 선생을 통해 알게 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와 같은 책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연말에 집중적으로 알게 된 박정자 교수의 여러가지 미학 관련 책을 통해 미셸 푸코, 롤랑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자크 라캉와 같은 구조주의 철학에도 관심의 범주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시오노 나나미, 전 국회의장 김형오를 새롭게 알았습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유명한 작가이지만 정작 '로마인 이야기'만 조명을 받고 있는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이나 와 '사일런트 마이너리티'같은 에세이는 역사소설이라는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시오노 나나미의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책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술탄과 황제'를 저술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입니다. 정치인의 삶을 내려놓고 직접 이스탄불에 체류하며 이 책을 썼다는 이분에게서 개인적인 감사의 메시지도 받기도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전문 작가가 아닌 일반 대중이 어떤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연구해서 이 정도의 결과물을 낼 수 있다면 가장 베스트겠구나 하는 그런 일종의 상한선을 제시한 것만 같았습니다. 갑자기 등장하여 로 문단에 큰 충격을 준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와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안타깝게도 김형오 작가는 이후로 새로운 책을 내지는 않았습니다만, 언젠가 이 분의 또 다른 책을 기대합니다. 그 때도 지금의 성실함과 열정 가득한 문체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4년에는 '르네상스 미술사 부작'을 통해 알게 된 서울대학교 고고미술학과 신준형 교수에 대해 가장 먼저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 [3부: 파노스키와 뒤러]로 구성된 이 3부작은 사실 지난 2004년부터 신 교수님이 발간한 책을 '사회평론' 출판사에서 다시 묶어 재발간한 것입니다. 신 교수는 지난 수년간 서양 미술사와 인문학을 연구해 왔는데, 그 연구 여정에서의 자기 성찰과 함께 연구 결과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제 관심사가 미술이 아닌 미술사(史)임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 점이 감사했습니다.

지난 3년간 읽어왔던 책들

지난 3년간 읽어왔던 책들

저는 지난 3년간 미학에 대한 관심으로 예술과 현대철학 책을 읽어왔습니다. 미학의 양대 뿌리죠. 그런데 그것은 학(學)의 경계 안에 머물러 있었고 어딘가 불편하고 어려웠습니다. '미학은,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왜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나만의 답을 내는 과정입니다. 때문에 學의 이름 아래 다양한 이론을 배워야 했고, 그 이론이 사장되지 않도록 다양한 훈련을 통해 나만의 이론을 만들어 나가야 했습니다. 바로 나만의 이론을 정립하고 만들어나가는 이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미학의 체계적인 이론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의 변명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제가 그것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미술관에서 어떤 그림을 보고 '아, 이것은 이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구나' 라는 즉자적인 생각이 나와야 하는데 정작 그 그림 앞에서 저는 멍하게 서 있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것은 좋다, 저것은 좋지 않다'라는 개인적인 취향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서경식 선생의 책을 좋아하며 그를 닮기 위해 블로그를 통해 등의 글을 썼지만 굉장히 피상적이고 가벼운 에세이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신 교수의 책은 또 한 번 사유의 범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조금 더 관심이 있던 건 미술이 아닌 미술사史, 예술이 아닌 예술사史였고 그런 히스토리를 연구하고 공부해나갈 때 오히려 나만의 미학론이 정립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신 교수의 책은 정작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을 수 있지만, 제가 책을 통해 배운 바는 이와 같았습니다. 예술에 관련한 텍스트를 계속 쓰려는 제 다짐은 동일합니다. 다만 어떤 것을 좀 더 배워나가면 좋을지 방향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3부작 중 1권에 해당하는 '뒤러와 미켈란젤로'는 많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로마 바티칸 여행 중에 접한 미켈란젤로의 많은 작품들에 대해 더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책 읽기는 행위의 목적을 다시 이야기해봅니다. 1년에 꼭 100권씩 읽지 않더라도, 하물며 단 10권의 책을 읽더라도 많은 텍스트를 읽고 나면 내용은 조금씩 기억이 나지 않고 희미해집니다. 제 경험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책 읽기를 마치고 며칠이 지난 뒤 제 기억 속에 남아있던 건 저자가 글을 전개하는 태도와 속도, 텍스트로 다 담아낼 수 없었던 방대한 사유의 세계, 저술의 성실함과 주장의 참신함, 이런 것이었습니다.

책은 책 읽기로 그치지 않습니다. 책에 담긴 정보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책 읽기는 우선 저자와의 교신입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책을 통해 저자가 누구였더라 그것 하나만 기억할 수 있어도 책 읽는 행위의 목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억지로 이름을 기억하는 행위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정말로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아있던 저자만이 자연스럽게 기억될 겁니다. 그렇게 기억남은 이름 석자로 다음에 읽을 책을 향해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출판사도 '다음 발 내딛기'의 훌륭한 지도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저자에서 시작되었고, 대개 좋은 출판사와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 경우에 한길사, 돌베게, 사회평론, 열화당, 현암사, 창비 출판사는 책 읽기가 막막할 때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길잡이였습니다.

2015년에도 책 100권 읽기를 계속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그것을 통해 배운 것을 글로 쓰는 것 역시 계속하려고 합니다. 2012년 이것을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다짐한 십계명이 있습니다. 이미 많은 계명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기준은 늘 필요하기에 그때의 십계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합니다.

1. 모든 책은 빌리지 않고 직접 사서 읽는다.
2. 서평을 쓰지 않는다.
3. 한 주제와 관련된 책을 적어도 10권 가까이 연속으로 읽는다.
4. 소설은 읽지 않는다.
5.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
6. 다음 책을 고르기 어려울 때는 특정 출판사의 책을 읽는다.
7. 내가 모르는 낯선 분야를 파고든다.
8. 뿌리 (역사, 인문) 에서 줄기 (사회) 를 지나 잎사귀 (예술) 의 책을 읽는다.
9.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은 노동이라고 느껴져도 끝까지 무조건 다 읽는다.
10. 350 페이지 전후의 책을 읽는다.

#새해 #독서 #책 100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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