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전통 광장시장의 나전칠기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4.12.31. 15:53

수정일 2014.12.31. 16:02

조회 4,258

백년 전통의 광장시장

백년 전통의 광장시장

1905년 생겨난 백 년 역사의 전통시장 광장시장은 사시사철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서울의 자랑스러운 명소가 되었다. 인사동, 삼청동 등 종로에 갈 적마다 광장시장을 찾곤 했는데 얼마 전 우연히 2층에 올라가 보았다가 새삼스럽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광장 시장 2층은 주단, 포목, 양품 등을 전문으로 하는 시장으로 알려졌는데, 놀랍게도 나전칠기 공예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다. 내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품으로 필수였다는 자개장, 밥상, 크고 작은 그릇들도 모두 나전칠기 제품이다.

나전칠기(螺鈿漆器)의 '나전(소라 라螺, 비녀 전鈿)'은 한국·중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 불렀다. 자개는 영롱한 빛깔의 진주 조개나, 전복 조개의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으로 무늬와 빛깔이 아름다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게 썰어 가구를 장식하는 데 쓴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또는 '자개 박는다'라고 일컫는다.

아름다운 무늬와 빛깔을 자랑하는 나전칠기 제품

아름다운 무늬와 빛깔을 자랑하는 나전칠기 제품

나전칠기 기법은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오려내어 기물의 표면에 감입시켜 꾸미는 칠공예를 이른다. 이러한 장식법은 한국·중국·일본을 비롯하여 미얀마·태국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원에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지역에 따라 각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일반적으로 목제품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것에다 한층 치레 삼아 첨가하는 자개무늬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목칠공예에 부수되는 장식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칠기를 제작하는 칠전(漆典)까지 있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자개에 옻칠을 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옻나무의 식재를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관리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전칠기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성행하였고,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이미 나전칠기를 제작했다고 한다. 그것을 입증할 만한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나전단화금수문경(螺鈿團花禽獸文鏡, 국보 제140호, 호암미술관 소장)이 옛 가야지방에서 출토되었다.

한복에 쓰이는 화사한 주단들이 환하게 밝히는 광장시장 2층 시장통을 지나가다보면 화려하게 빛나는 나전칠기 공예품들이 자리한 가게들이 나타난다. 크고 작은 장롱에서 병풍, 각종 함, 동물 등의 공예품들이 흡사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작품을 감상하듯 둘러보게 된다.

이외에도 탁상시계, 부채, 명함 케이스, USB 메모리, 열쇠고리 등 다양한 자개 생활용품들도 있어 소장이나 선물용으로 좋은 것들이 많았다. 나전칠기 가게들이 모두 도매상이지만 따로 찾아온 소비자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터라 소량 판매도 한단다. 어느 제품에도 한국 고유의 멋이 깃들어 있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무척 좋아할 것 같다.

나전칠기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

나전칠기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

기자가 타는 자전거도 그렇고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브랜드는 달라도 제조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질문을 조심스레 해보았다. 놀랍게도 수요가 많지 않고 모든 공정이 수작업인 제작 공정의 까다로움에도 아직도 우리나라에 나전칠기의 맥을 잇는 분들이 있단다. 보면 볼수록 나전칠기 공예품 하나하나에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이 새겨져 있었다.

광장시장 상인들 또한 장인들 못지않게 전통공예의 자존심을 지키는 분들이 아닌가 싶었다. 어느 가게는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뒤를 이어 나전칠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상인이자 30년이 넘는 경력의 나전칠기 제작자로 나전칠기에 회화기법을 접목시킴으로써, 나전칠기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분으로 KBS TV에도 방영되었단다.

TV에도 방영된 나전칠기 가게

TV에도 방영된 나전칠기 가게

아들 또한 그런 아버지에게 옻칠에서 절삭, 색칠에 자개 붙이는 공정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배우고 있다고. 요즘에는 전통적인 나전칠기 공예품 외에 현대인의 감성을 접목한 생활 공예품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십 대 후반의 아들은 나전칠기 명장이 되는 게 꿈이란다. 그 꿈이 이뤄져 젊은 나전칠기 장인의 탄생이 기대된다.

나전칠기 업계에서 일한지 35년이 넘었다는 이웃 가게 아저씨는 "나전칠기는 한국 고유의 전통공예품이기 때문에 동양권에서 한국이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만든다"라며 특히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단다. 일본의 여느 사찰에서는 벽화를 나전칠기로 만들기도 한다고.

보통 중장년의 시민들이 찾아오곤 하는 데, 젊은 사람이 이런 옛 공예품에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감상하는 모습이 대견했는지 상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나전칠기 또는 자개 공예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나전칠기 작품의 색상이 참 다양하고 화려하다고 했더니,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 조개류를 사용하였으나 조선 후기부턴 청록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개껍데기와 전복껍데기 자체의 박막(薄膜)에서 생기는 색 현상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들어 내다니 인간의 상상력이란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만큼 나전칠기 공예는 제작 공정이 까다롭다. 깊은 바다 속에 사는 전복과 조개껍데기를 가공한 다음, 옻칠한 나무에 그림으로 올리고, 다시 칠을 하고 표면을 연마해서 만든다. 나전칠기의 제작기간은 25일에서 45일이 걸린다. 백골(나무틀)에 밑일(초벌작업)을 하고 일주일 정도 후에 다시 자개를 붙이고, 이후에도 4번 정도 더 칠을 해서 만든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 낼 수 없어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이렇게 나전칠기 공정은 재료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을 만들기까지 시일도 오래 걸리고, 모든 것이 수작업이다 보니 힘도 많이 든다. 시장통에 있는 가게들에 있는 공예품들은 모두 30년 이상의 숙련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전칠기로 만든 수납함

나전칠기로 만든 수납함

나전칠기 업계에서 일한지 30년이 넘었다는 김선호(64세) 씨는 "나전칠기는 한국 고유의 전통공예품이기 때문에 동양권에서 한국이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만든다"라며 "일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일본 한 사찰에서는 벽화를 나전칠기로 만들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나전칠기 제품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구식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오히려 외국으로 많이 팔려나간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신혼부부들은 가구를 구입할 때 나전칠기 제품보다 심플할 디자인의 가구를 선호한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 공예품이 외국인들에게는 인정받고 있으나, 정작 우리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시대와 유행에 밀려나면서도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손톱 끝의 열정으로 현대적인 감각이 접목된 새로운 공예품을 창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공예작가들과 상인들의 모습이 마음 짠했다. 최근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생활공예품으로서의 나전칠기가 조금씩 소생하고 있다. 현재 국가적으로 나전칠공예를 보호육성하기 위하여 주름질 중심의 기능을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螺鈿匠)으로 지정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 위치: 광장시장 2층에 올라가 상인들에게 나전칠기 가게를 문의하면 잘 알려줌.
○ 운영시간: 평일 오후 7시, 토요일 6시까지 (일요일 휴무)

#광장시장 #나전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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