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뜨거운 감동과 논란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12.30. 13:53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77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이 개봉 12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관객의 지지는 절대적이다. 네이버 관객평점에서도 9.27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이 이런 폭발적 열기를 만들어낸 것일까?
뜨거운 감동이다. 한국인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안 느낄 수가 없다. 이 작품은 흥남부두에서의 철수에서부터 부산의 피난민 생활, 파독 광부, 월남 파병, 80년대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한 아버지의 삶을 통해 표현했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얼마나 힘든 역사를 헤쳐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분들의 희생, 헌신에 새삼 눈물이 솟구친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안은 거의 울음바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훌쩍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감동의 눈물엔 세대의 구분이 없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윗세대의 고투를 생각하며, 기성세대는 기성세대대로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며 감동에 빠진다. 모처럼 거국적인 차원의 감동작이 등장한 것이다.
감독은 명민하게도 일체의 정치색을 배제했다. 파독 광부, 간호사들 앞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타날 법도 하건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김영삼, 김대중 저 대통령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아버지의 삶에 인간적으로 집중할 뿐이다. 이 전략이 관객들의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반응은 일반 관객들과 다르다. 네이버 평점에서도 관객평점이 9.27인데 반해 기자와 평론가 등 전문가 평점은 5.81에 머무른다. 기자를 제외하고 평론가 평점만을 산출하면 아마도 점수가 더 낮게 나올 것이다. 그에 따라 일반 대중이 평론가를 공격하는 구도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왜 평론가들은 <국제시장>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일까?
<국제시장>은 웃기고 울린다. 재미와 감동을 준다는 뜻이다. 관객 입장에선 그것으로 족하다. 반면에 평론가는 감동과 재미 그 이상의 것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 영화의 경우엔 6.25 전쟁에서부터 80년대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파노라마처럼 그려주는 콘셉트이기 때문에 당연히 역사관, 우리 역사의 진실을 총체적으로 구현했는가를 따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분석하면 자연스럽게 비판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국제시장>이 우리 역사의 중요한 축인 민주화 부분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과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 피로 희생했던 역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아버지의 헌신이 낭만적으로 그려질 뿐이다. 그것이 따뜻하고 감동적이긴 하지만 역사의 총체적 진실엔 미치지 못한다.
지식인들은 원래 작품을 보는 시각이 약자 편향적이고 보편가치 지향적이다. 약자의 편에 선 작품이나 인권, 자유 등 보편가치를 표현한 작품을 높게 친다. <국제시장>의 경우엔 여공의 인권을 위해 분신한 전태일 등 약자와 보편가치를 위한 현대사의 몸부림이 삭제됐다는 점도 평이 안 좋아진 이유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삶에 역사 흐름을 접목한 콘셉트여서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불린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에서 대중적 찬사와 전문가들의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열심히 산다. 그랬더니 부자가 된다. 미국이 과연 열심히 살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나라일까? 이런 영화엔 사회적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가 비판이 나왔는데 <국제시장>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
<국제시장>에서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다. 그랬더니 중산층 대가족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한국사회가 과연 열심히 살기만 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일까?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라면 사회비판은 무의미하다. '사회탓'은 자신이 게으른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을의 설움을 겪는 미생들은 모두 열심히 일을 안 했기 때문에 그런 처지를 자초한 것이다. <국제시장>의 세계관은 무의식중에 이런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웃음과 눈물을 주는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비판적 시선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대중의 감동과 평자의 비판이 공존하는 작품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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