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소나무 중 과히 최고

이장희

발행일 2015.01.07. 13:07

수정일 2015.01.07. 18:16

조회 1,839

석파정 소나무

이장희의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7 – 석파정 소나무

종로구 부암동에는 흥선대원군이 벗으로 삼았다는 소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흥선대원군의 별장 앞에 있다. 석파정은 조선말기 중신(重臣) 김흥근(金興根·1796~1870년)의 별장이었다가 흥선대원군이 집권 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한 곳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황현(黃玹)이 조선 말의 역사를 담아 쓴 <매천야록(梅泉野錄)>에 의하면 흥선대원군은 처음 김흥근에게 이 정자를 자신에게 팔기를 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아들 고종과 함께 행차하여 묵고 갔다고 한다. 이에 김흥근은 '임금이 묵고 가신 곳에 신하가 살 수는 없다'고 말하고 헌납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 풍습에 임금이 머무른 곳에는 다른 누구도 살 수 없다는 말이 전해 오는데, 이를 이용하여 흥선대원군은 강제로 석파정을 빼앗았다는 얘기가 된다. 어찌 되었든 뺏고 싶을 정도로 맘에 들었던 이곳을 흥선대원군은 정자의 앞산이 모두 바위라는 의미에서 '석파정(石坡亭)'이라 이름 지었다. 그 한가운데 있는 소나무는 이곳의 풍치를 한껏 드높이고 있는데 높이는 5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부챗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자란 바늘잎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의 넓이는 무려 67㎡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를 너무 말끔하게 포장해놓아 옛 모습이 사라져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애국가'의 2절에 '남산 위의 저 소나무'라는 가사에 등장할 만큼 친숙한 민족의 나무다. 소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은 꽤 오랫동안 변함이 없다. 흔히 소나무를 '솔'이라고 하는데 이는 '수리'라는 순수 우리말에서 온 것으로 '으뜸'을 의미한다. 즉 소나무는 나무 중에도 최고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궁궐에 쓰는 나무의 기둥을 소나무로 고집하는 것은 여전하다. 또한 나라에서는 주요 토목 공사나 군선을 만들기 위해 미리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금송령을 내리는 한편, 산 전체에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지정하는 산림정책을 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숲의 천이과정 중에 마지막을 차지한다는 신갈나무나 굴참나무와 같은 넓은잎나무만이 우리 숲에 가득하지 않은 이유가 조상들이 소나무를 사랑하여 보존했던 이유도 한몫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석파정에 있는 소나무는 서울에 있는 소나무 중에서는 과히 최고라고 손꼽힐만한 나무다. 지금 석파정은 서울미술관과 붙어있어 미술관에 입장하여야만 관람이 가능한 곳이 되었다. 오롯이 호젓한 정취만 느끼고픈 사람에게는 미술관 입장료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중섭의 '황소'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어있는 미술관을 지나 석파정에 오르면 예술도 옛 풍류도 함께 느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사연있는 나무이야기 / 이장희

※<사연있는 나무이야기>는 서울시 E-BOOK(http://ebook.seoul.g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소나무 #석파정 #이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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