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퀴 서울여행 (26) 뚝섬에 있는 ‘뚝도시장’을 아시나요?

시민기자 김종성

발행일 2014.12.18. 11:35

수정일 2015.11.19. 20:51

조회 4,434

한강 자전거 도로에 표시된 뚝도시장 가는길

한강 자전거 도로에 표시된 뚝도시장 가는길

자전거를 타고 한강 자전거도로를 따라 달리다 서울 숲을 지나면 자전거도로 바닥에 '뚝도시장'이란 큰 글씨가 눈길을 끈다. 한강가에서 이렇게 자전거 길 위에 시장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처음이고, 뚝섬의 한자어로 붙인 시장의 이름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찾아가게 되는 곳이다. 화살표를 따라 시장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뚝도시장(서울 성동구 성수동)이 자리하고 있다.

뚝도시장 코다리찜

뚝도시장 코다리찜

나들목을 지나 추천 먹거리를 물어보려 들른 시장 들머리에 자리한 '동일 자전차(자전거의 옛말)' 가게 아저씨는 시장에 가면 명태를 반 건조해 양념 조리한 '코다리찜'을 추천하며 지금은 "뭐 볼 거 없는 시장"인데 이래봬도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이었다며 사람들로 북적이던 당시를 증언했다. 어쩐지 시장이름이 심상치가 않았다.

도로 양편으로 '뚝도시장'이라 쓰여 있는 시장통 입구 간판이 여러 개 보이고, 안쪽으로 미로 같은 골목이 이어져있다. '정말 큰 시장이었구나' 자전차 가게 아저씨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한때 번성했던 오래된 시장의 역사는 '뚝도'라는 이름에서 짐작 가능하다. 지금은 '뚝섬'이라 불리는 서울 숲 주변 동네를 가리키는 옛날 말인 '뚝도'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지금도 뚝도 방앗간, 뚝도 빈대떡, 뚝도 기름고추 가게를 비롯한 몇몇 가게에서 그때의 영광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주말에도 문 닫은 곳이 많은 뚝도시장

주말에도 문 닫은 곳이 많은 뚝도시장

사람들로 북적이고 화려했던 옛 영화는 사라지고 볼품없는 시장이라는 자전차 가게 아저씨의 말 또한 사실이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주말이었지만 셔터 문이 내려진 가게들이 흔히 보였다. 시장 골목을 지나는 손님은 가끔씩 눈에 띄었고, 차라리 텅 비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였다. TV에 나온 맛집이라는 코다리집, 순대국집, 국수집 등에 그나마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시장 상인 아주머니에게 어느 시장마다 있는 번영회 사무실을 물어보니 2층의 작고 허름한 곳을 알려 주셨다.

"뚝도시장이 죽은 지는 약 십여 년 전 입니다. 시장 바로 길 건너에 대형마트(이마트)가 그것도 본사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몰락했어요.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들은 물론 미장원, 안경점, 세탁소 같은 것들이 마트에 다 있으니까요. 적어도 시장에서 파는 식료품은 마트에서 못 팔게 했어야 하는데 그 땐 마트의 힘이 그리 대단한지 몰랐어요." 시장 번영회 사무실에서 만난 아저씨의 말이다.

뚝도시장은 1962년에 개장한 것으로 한때 400여 점포가 넘는 서울의 3대 재래시장 중의 하나로 꼽혔다. 이렇게 뚝도시장은 수십 년 간 성수동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지만, 지난 2001년 이곳에 대형할인점 이마트 본사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현재 하루 이용객이 100여명에 불과하고 점포당 하루 매출액은 평균 4만∼5만원으로 떨어졌다. 한 달에 두 번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하는 날엔 시장 주변에 서너 개 있는 큰 쇼핑센터, 슈퍼마켓으로 손님이 몰린다고.

작년에 기자가 사는 동네 인근에 있는 마포구 망원시장 상인들이 똘똘 뭉쳐 대형 할인점 홈플러스가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 투쟁을 벌였던 일이 생각났다. 대형 마트가 들어선 후 상권이 죽어가던 재래시장의 현실을 알기에 천막농성은 물론 항의의 의미로 다섯 번이나 철시(시장, 가게 등이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음)를 하기도 했다. 결국 홈플러스와 망원시장·월드컵시장 그리고 감독 관청인 마포구청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만들어졌고 상생 협약식을 맺었다. 일종의 사회적 타결이었다. 홈플러스는 일부 채소와 생선 등 17품목을 팔지 않는 '품목 제한제'를 실시하기로 약속을 하는 등 협의 끝에 홈플러스는 문을 열었다.

공영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만들고 있는 뚝도시장

공영주차장,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만들고 있는 뚝도시장

대형마트가 들어선 후 뚝도시장은 성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공영 주차장과 깨끗한 화장실, 지붕을 잇는 아케이드 등 전면적인 시설공사를 하는 등 노력했지만, 여러 상점들과 온갖 편의시설을 갖춘 대형마트에겐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대형마트의 위치가 뚝도시장 교차로 길 건너 5분 거리에 있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었다. 도로 길가에 주변의 모든 상점들을 빨아들일 듯 이마트 본사 건물이 진공청소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거대 마트가 가까이에 있다면 명소가 된 망원시장, 통인시장, 광장시장도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뚝도시장 순대집

뚝도시장 순대집

2인분이 기본이지만 배고픈 자전거족에게 특별히 1인분을 마련해준 식당 아저씨도, '뚝도 방앗간' 아주머니, 정육점 아저씨도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말에 기운이 없다. 이웃 동네인 2호선 전철 성수역 부근 성수동엔 '수제화 거리'가 생겨나면서 세련된 아트 공방이나 갤러리, 카페들이 성업 중인 것과 대조되는 풍경이다.

대형마트에선 '합법적 진출'이라고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선 도시에 끼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싼 가격과 편리한 쇼핑 환경으로 무장한 대형마트와 대기업슈퍼마켓(SSM)의 공세로 전통 재래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현상은 대도시와 지방의 작은 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시장경영진흥원의 실태조사 결과 2004년 이후 8년 사이에 전통 재래시장은 191곳이 문을 닫았다.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전체 유통업 종사자의 65%인 35만 4천여 명에 달한다. 직원이 겨우 6만 명을 넘은 대형 할인점과 비교하면 6배가량이나 된다. 경제 불황이 깊어가면서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시하는 요즘 전통시장을 반드시 살려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이렇게 시장은 도시와 함께 자란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그의 에세이에서 자기가 사는 도시의 가게 이름을 죽 나열한다. 출석을 부르듯 호명하는 가게들 이름은 무려 세 페이지를 넘어간다. 이스탄불에 대한 그의 기억과 애정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슈퍼마켓, 빵집, 피자 가게, 미용실, 옷 가게, 철물점… 이런 작은 가게들과 시장이 사라져가고 공룡 같은 대형마트들과 백화점만 있는 도시는 작가에게도 시민들에게도 살 만한 도시가 아니다.

김종성 시민기자김종성 시민기자는 스스로를 '금속말을 타고 다니는 도시의 유목민'이라 자처하며,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과 사진에서는 매일 보는 낯익은 풍경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진다. 서울을 꽤나 알고 있는 사람들, 서울을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들 모두에게 이 칼럼을 추천하는 바이다.

#뚝섬 #뚝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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