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폭탄테러까지 초래한 위험한 인터넷 문화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12.16. 17:28

수정일 2015.11.17. 18:48

조회 371

PC방ⓒ뉴시스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75

이른바 종북 논란을 빚었던 신은미 토크콘서트장에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사제폭탄을 가지고 나타나 터뜨린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폭탄 테러 사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터졌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마치 해방공간으로 퇴행한 듯하다.

폭탄을 터뜨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경악할 일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다. 첫째, 이 일이 우연히 터진 일회적 사건이 아니란 점, 둘째, 우리 사회에 폭탄테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점 등이다.

일회적 사건이 아니란 얘기는 이것이 대중문화의 흐름 속에서 이미 예견되었었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 게시판 문화는 그동안 분노, 공격성의 수위를 계속 높여왔다. 특히 황폐한 학교환경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청소년과 불안한 20대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분노를 증오로 키워왔다. 그것이 결국 물리적 폭력으로 진화할 거란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일베'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극우적 분위기가 증오와 폭력의 요람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애국과 보수를 명분으로 내세워 여성, 외국계 등 사회적 약자들과 시민단체, 호남, 북한 등에 대한 증오를 분출시켰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게시판에 모여 상대를 절대악으로 규정하며 성토하는 사이에 점점 감정이 고양되어 일촉즉발의 상태가 되었다.

이들이 겉으론 애국적 가치를 주장하지만 사실은 대한민국의 국체인 근대시민사회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반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근대시민사회에서 폭력은 국가가 독점한다. 자유시민들은 폭력이 아닌 말로서 토론하고 경쟁한다. 배제하거나 처벌하는 것은 공권력의 몫이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 대한민국 체제의 기본적인 원칙인데, 이들은 마음에 안 드는 주장에 대해 직접적 폭력의 에너지를 키워왔다.

예컨대, 얼마 전 대학가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불었을 무렵 대자보를 찢어버리고 인터넷 게시판에 인증샷을 올린 사건이 있었다. 마음에 안 드는 대자보가 있다면 그 옆에 반박하는 내용의 다른 대자보를 내세워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근대시민사회의 방식이다. 반면에 북한, 히틀러, 스탈린 등의 방식은 마음에 안 드는 주장을 없애버리고 그런 주장을 한 사람도 처벌하는 식이다. 일베를 중심으로 인터넷에 나타나는 공격적인 문화는 북한, 히틀러, 스탈린 등의 방식과 닮았다. 이런 사고방식에선 마음에 안 드는 주장을 가로막고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한 묶음이기 때문에, 대자보 훼손이 언젠간 사람을 향한 직접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측됐었다. 이번 사제폭탄테러 사건을 보면 결국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인터넷 인증샷 문화가 폭력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에 사제폭탄테러를 일으킨 학생도 사전 인증샷, 현장 인증샷, 심지어 경찰서에서 수갑 찬 자기 손 인증샷까지 찍어 게시했다. 일종의 과시행위다. 불안, 고독, 열패감 등에 빠진 젊은이들이 인증샷을 통해 경쟁적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가운데에 과시행위의 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인증샷을 본 사람들의 찬사가 더욱 불을 붙인다. 이번 테러의 인증샷에도 '존경합니다, 의사님', '장군님 제발 무사귀환 바랍니다, 용기 있는 애국행동에 정말 감사합니다', '열사의 익산대첩' 등 영웅시하는 반응들이 나타났다. 이런 문화가 자리잡으면 행동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종의 봉건왕조 혹은 사교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에 동조하는 흐름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심각한 일이다. 그것과 별개로 타인의 주장에 대해 폭력으로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흐름도 우리 국가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사안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건 학교에서의 시민교육 부재, 폭력적 언행에 찬사를 보내는 네티즌, 옹호해주는 일부 기성세대,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언론 등이 모두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엄중한 위기의식으로 대처해야 더욱 큰 폭력이 나타나는 걸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일베 #하재근 #컬처톡 #사제폭탄
매일 아침을 여는 서울 소식 - 내 손안에 서울 뉴스레터 구독 신청 내가 놓친 서울 소식이 있다면? - 뉴스레터 지난호 보러가기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의 장이므로 서울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전자민원 응답소 누리집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성 광고, 저작권 침해, 저속한 표현, 특정인에 대한 비방, 명예훼손, 정치적 목적,
유사한 내용의 반복적 글, 개인정보 유출,그 밖에 공익을 저해하거나 운영 취지에 맞지
않는 댓글은 서울특별시 조례 및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응답소 누리집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