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뜨는 이유

하재근(문화평론가)

발행일 2014.12.09. 11:04

수정일 2015.11.17. 18:49

조회 941

인터스텔라(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우)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컬처 톡’ 74

최근 헐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가 크게 흥행한 데에 이어 한국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주목 받고 있다. <인터스텔라>는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뜨거운 반응이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이 한국인의 감성과 잘 어울렸다는 이야기다.

<인터스텔라>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이 한국에서 명품 감독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명품에 민감한 한국인이 관람 열풍을 일으킨 측면도 있고, 교육적 성격이 있기 때문에 교육열이 특히 강한 한국 부모님들이 자녀와 함께 관람에 나선 것도 이례적인 흥행의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블록버스터인데 한국인이 헐리우드의 대형 볼거리, 신비로운 이미지를 대단히 선호하기 때문에 더욱 흥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흥행 코드는 바로 가족이다. 보통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강인한 히어로가 등장한다면 <인터스텔라>엔 평범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일반적인 히어로는 '인류평화'를 위해 희생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딸을 비롯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한다. 이미 한국에선 자식을 돌보는 아버지 코드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딸바보' 캐릭터가 인기였는데, 딸을 아끼고 지켜주는 아버지를 일컫는 말이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이 바로 딸바보였다. 아버지의 뜨거운 정, 가족 간의 사랑 같은 가족주의 코드에 서양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인의 공감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제6회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뜨거운 반응으로 전석 매진과 함께 관객상까지 수상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여세를 몰아 150여 관 상영이라는 독립다큐멘터리 사상 최대 규모 개봉까지 이끌어냈고, 불과 일주일 정도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주목 받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 사상 최대 규모라고는 하지만 일반 상업 영화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규모의 개봉이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는 이보다 최소한 몇 배에서 열 배 가까운 규모로 상영될 때가 많다. 게다가 이른 시간과 심야시간대에만 '퐁당퐁당' 상영되어 150여 관이라는 개봉관수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그런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짐 캐리가 나오는 헐리우드 오락물 <덤앤더머2>와 비슷한 정도의 흥행속도를 보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2월 5일엔 예매율 전체 3위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부녀지간이 아닌 부부 사이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100살이 다 된 할아버지와 90살이 다 된 할머니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관객은 이 노부부의 삶을 통해, 두 사람이 함께 의지하면서 사는 모습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중년 이상의 관객은 영화를 보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고, 젊은 관객에겐 사랑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는 기회가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이지만 의외로 젊은 관객들의 비중이 높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극장 안에 불이 켜지면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이 목격된다. 그만큼 노부부의 사랑이야기가 감동적이라는 뜻이겠다. 시골 마을의 정취까지 전해져, 관객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작품이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뜨는 것은 역시 세상이 차갑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립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안 하려고 하고, 노년층 사이에선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 그에 따라 나홀로 가구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추세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가 각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외톨이 생활이라는 물리적 고독까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스크린에서나마 가족 간의 사랑, 부부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행복한 눈물을 흘리는 것일 게다. 이미 TV에서도 아버지와 아이들을 내세운 가족예능이 폭발적인 인기였다. 바야흐로 가족이 그립고, 사랑이 그리운 시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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