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군살을 빼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김별아(소설가)

발행일 2014.12.05. 17:37

수정일 2015.11.16. 06:11

조회 995

풍경ⓒ깨비

목이 마를 때, 당신은 바다를 통째로 마셔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당신이 충분토록 마시는 것은 고작 한두 잔이 전부다.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

소설가 김별아의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52

다이어트 성공률이 암 완치율보다 낮다는, 믿기도 웃기도 어려운 이야기가 있다. 비만의 완치율(5년 후 치료 성공률)이 암보다도 떨어진다는 통계에 바탕을 둔 것인데, 어쨌거나 다이어트는 건강과 미용 양면에서 현대인의 큰 과제인 게 분명하다. 원 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덴마크 다이어트, 한방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이름만 주워섬기기도 벅찬 수많은 방법들 중에 이른바 간헐적 단식, 혹은 1일 1식이라는 새로운 식사법이 있다.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공복으로 두다가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날 때 원하는 만큼 식사를 하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될뿐더러 노화를 막고 장수까지 할 수 있다는데...

'다이어트'라는 말 자체가 낯설던, 여전히 안 먹기보다는 못 먹는 일이 흔했던 이십여 년 전,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 '1일 1식'을 시도했던 선구자를 알고 있다. 그는 내가 미쳐 있던 문학만큼이나 먹고살기에 녹녹치 않기가 자명한 '순수미술'에 미쳐 있던 친구였다. 그나마 글쓰기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수 있지만 그림을 그리려면 물감이며 종이며 반드시 필요한 재료들이 많아, 친구를 만나면 밥은 항상 내가 사야 했다. 그런 지경에 친구가 시작한 것이 바로 하루에 한 끼 먹기, 지금 식으로 1일 1식이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려면 남들처럼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것은 포기하겠다!"는 비장하고도 처절한 각오에서 비롯된 궁여지책이었다.

하루에 밥 세 끼는 다만 상징적인 것이다. 한국사회는 최소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상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점점 가난해짐을 느낀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 짓기(distinction)' 이론에 따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별 짓기란 부자들이 자기가 부자임을 가난한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한 문화적 전략으로, 명품, 와인, 골프, 클래식 등으로 상징되는 소비와 문화의 '차별화'가 곧 고급하고 세련된 것을 향유하는 상류층과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에 몰두하는 하류층과의 계급적 '차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안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내 친구와 생계형 전업 작가로 기신기신 살아가는 나는 필사적으로 그 차별화 전략에 맞서 차이를 없애기 위해 분투 중이다. 그것은 우리가 애초에 하루에 한 끼씩 먹을 각오로 '욕망의 다이어트'를 해온 덕택이다. 애초에 남들처럼 먹고 마셔서는 다이어트가 불가능하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행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삶의 군살을 빼야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무엇을 하는 데 있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을 원하는 욕망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다. 한두 잔의 물이라면 충분함을 알면서도 바다를 통째로 집어삼킬 듯 갈급한 욕망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갈증과 굶주림에 다름 아니다. 욕심 사나운 탐욕가들은 기실 마음의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을 불쌍해하기보다는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에, 세상은 끝없이 배고프고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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